“위안부 문제는 학자들 노력으로 더는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사실관계가 증명됐어요.” 다인종 단체 연합체인 ‘위안부정의연대’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릴리언 싱(왼쪽)과 줄리 탕이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아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지난 9월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를 시 공공소유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14일(현지시각)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샌프란시스코 기림비는 아시아 여성들을 위한 미국 내 첫 동상이다.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 국제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위안부정의연대’의 릴리언 싱, 줄리 탕 공동의장을 만났다.
릴리언 싱과 줄리 탕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판사다. 각각 30년과 26년을 판사로 일한 뒤 지금은 휴직 중이다. 탕은 2014년, 싱은 2015년 휴직원을 냈다. 싱은 북캘리포니아의 첫 아시아계 여성 판사이기도 하다. “판사직을 쉬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판사란 직업을 사랑해요. (판사를 그만둔 것은) 저에겐 큰 희생이었어요.”(싱) 미국에서 연방 판사는 종신직이지만 주 판사는 6년마다 재임용 계약을 맺는다.
둘 다 캘리포니아주 판사로 일하다
‘위안부정의연대’ 만들어 함께 활동
난징학살에서 ‘위안부 문제’로 이동
제도화된 시스템에 의한 범죄”
샌프란시스코의회, ‘위안부 기림비’
시 공공소유물 지정 결의안 통과
아시아 여성들 위한 미국 내 첫 동상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 위해 뛸 것”
싱은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공청회를 하루 앞두고 법원을 그만뒀다. ‘위안부 기림비’ 건립 결의안 채택을 위한 공청회였다. 이용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도 증언한 공청회를 거쳐, 결의안은 2015년 9월 만장일치로 시의회를 통과했다. “현직 판사가 공청회에서 공개 발언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싱)
둘은 재작년 8월 다인종 단체 연합체인 ‘위안부정의연대’(CWJC)를 만들어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가 나서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 세운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는 미국 대도시 최초의 위안부 조형물이다. 한국 동포가 아닌 중국계가 주도해 세운 첫 기림비이기도 하다. ‘위안부 운동’의 국제연대 모색을 위해 하루 전 한국을 찾은 두 사람을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731부대 퍼뜨린 세균에 두 언니 잃어
이번이 세번째 방한이라는 두 사람에게 먼저 언제 판사직에 복귀할 것인지부터 물었다.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목소리로 답했다. “돌아갈 수도,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어요. 돌아간다면 더는 정치적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을 때이겠죠.”
둘이 오랜 기간 골몰해온 주제는 ‘난징대학살’이었다. 판사로 일할 때인 1997년 ‘난징대학살 배상연합회’(RNRC, 이하 연합회)란 단체를 만들어 학살의 실체를 알리는 운동을 펼쳐왔다. 지금도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일본군은 1937년 12월13일 당시 중국 수도인 난징을 점령해 6주 동안 무차별적으로 중국군과 민간인을 학살했다.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학살 피해자는 대략 20만~30만명, 강간 피해 여성은 2만~8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연합회 발족식은 바로 싱의 집에서 열렸다. 두 사람은 중국계 미국인 역사가인 아이리스 장(1968~2004)과 함께 ‘난징’을 주제로 대중 강연과 교육 활동을 하기도 했다. 난징학살의 실체를 파고든 베스트셀러 <난징의 강간>을 펴낸 장은 책 출간 뒤 일본 극우세력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권총 자살을 했다. 장이 생을 마치기 직전에 셋은 함께 ‘일본 히로히토 천황을 기소하기 위한 모의재판’을 열기도 했단다.
“97년 당시 난징대학살은 중국계는 다 알지만 중국 커뮤니티 밖에선 잘 몰랐어요. 연합회는 유대인 대학살처럼 국제적으로 (이 사건이) 알려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판사는 정의실현이 목표죠. 난징 활동도 정의 실현 차원에서 접근했어요.”(싱)
“731부대의 생체실험같이 일본이 중국에서 저지른 범죄를 널리 알려서 일본이 전쟁범죄 책임을 지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어요. 젊은 세대 교육도 신경을 많이 썼죠. 큰돈을 들여 <뉴욕 타임스>에 광고도 했어요. 중국 정부도 2015년부터 12월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죠.”(탕)
난징에서 ‘위안부’ 문제로 활동의 초점을 바꾼 이유를 물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자꾸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죠. 난징 기록문화유산은 2015년 유네스코 등재가 결정됐죠. 당시 뉴욕에서 등재 회의가 열렸는데, 연합회가 40만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받아 제출했어요. 그런데 (함께 신청한) 위안부 기록물은 일본 정부가 열심히 로비를 해 등재가 거부됐죠. 난징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가 더 큰 싸움이라고 판단했어요. 일본이 적극적으로 역사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면서요.”(탕)
둘은 위안부 문제를 두고 “여성들이 전시에 어떻게 희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큰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 점이 샌프란시스코 시의회가 일본 정부의 적극적 로비에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유라고 했다.
“(위안부는) 세계적 이슈입니다. 세계 여성인권의 문제이죠. 처음에는 조선에서 끌려간 여성이 가장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국 학자 연구를 보면 중국에서 위안부로 20만명이 끌려갔어요. 한국은 16만명이 끌려갔죠. 제가 태어난 상하이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어요. 상하이에도 위안소가 많이 있었어요.”(싱)
싱은 고교 입학 무렵 미국으로 건너갔다. 2차 대전 때는 가족과 함께 상하이에서 인접 도시로 탈출했단다. “일본군이 지나가면 상하이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해야 했다고 어머니가 말하더군요. 중국 사람들은 일본의 노예라는 발상이었죠.”
탕도 언니 두 명을 전쟁 중 잃었다. “전쟁 때 가족이 광둥성의 한 마을로 피난을 갔어요. 근처에 일본 731부대가 있었다고 해요. 이 부대가 퍼뜨린 세균에 감염돼 두 언니가 죽었어요.”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복판에 세워진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위안부정의연대 제공
“오사카 시의원들과 시민들 생각은 다르다”
둘은 지금껏 일본 정부가 난징 등 전쟁범죄를 두고 자국 의회가 승인하는 공식 사과를 한 적이 없다고 분노했다. “난징과 위안부, 생체실험은 2차 대전 중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라는 점에서 같은 성격입니다. 일본 총리들이 (사과와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 적이 있지만 그건 법적 효력이 없어요. 일본 의회 비준을 거친 사과는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싱)
난징 때도 수많은 여성이 잔혹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서양 선교사가 세운 난징 금릉(진링) 여학교에서 시민 만명을 보호하고 있었어요. 일본군이 밤마다 여자를 내보내라고 해서 하루 20명씩 내보냈다고 합니다. 나중엔 어린 여학생까지 나갔어요. 이들 가운데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죠.”(탕)
하지만 난징의 이런 피해는 ‘위안부’와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난징에선 무차별적인 강간 피해를 봤지만, 위안부는 제도화된 시스템에 의한 범죄라는 것이다. “위안부는 일본 정부와 군부가 미리 계획해 체계적으로 만들었어요. 군 상층부에서 이 시스템이 갖는 이점을 미리 생각하고 제도화한 것이죠. 1932년부터 45년까지 13년 동안 운영했죠. 규모도 가장 컸어요.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가 없어요.”(싱)
싱은 2년 전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에 적극적으로 동조해온 한 참석자가 그러더군요. (전시 여성 강간 피해는) 콩고에서도 있었고, (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보코하람도 저질렀는데, 왜 한국이나 중국계만 당한 것처럼 얘기하느냐고요. 왜 자꾸 위안부 문제만 따로 떼어내 주장하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위안부는 일본 정부가 전쟁을 잘 수행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놓은 제도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14일(현지시각) ‘위안부 기림비’를 시 공공소유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2년 전 기림비 결의안 통과 때 합의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시와 60년째 자매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오사카시의 요시무라 히로후미 시장은 지난 9월 기림비 제막 뒤 이 조형물이 시 소유물로 확정될 경우 자매 관계를 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탕은 1980년대 시민대표단의 일원으로 자매도시 오사카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 그는 “오사카 시장은 관계를 끊겠다는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오사카 시의원들과 시민들은 시장과 생각이 달라요. 시민들로부터 (기림비 건립을 지지한다는) 편지를 많이 받았어요.”(싱)
이번 방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17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열린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둘은 기록물 등재가 매우 중요하고 긴급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중국 학자가 2년 전 유네스코에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신청할 때 위안부는 여러 나라가 피해를 봤기 때문에 피해국이 함께 제출해야 한다면서 등재를 거부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8개국이 함께 제출했어요. 피해자 구두 증언 등 유네스코가 요구한 모든 조건을 다 맞췄어요. 그런데 이번엔 피해 당사국과 일본이 협상을 해야 한다면서 거부했어요.”(탕)
“위안부 문제는 학자들 노력으로 더는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사실관계가 증명됐어요. 이제는 시위나 다른 활동을 통해 정치적 압박을 취하는 게 더 중요해요. 역사전쟁을 하는데 일본이 (등재 관련) 협상을 받아들이겠습니까? 2년 뒤에는 유네스코가 꼭 통과시킬 수 있도록 유네스코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폭로하는 게 중요해요.”(싱) 미국 탈퇴로 재정난에 처한 유네스코가 재정 분담국 1위국인 일본의 압박에 밀려 등재를 거부했다는 게 둘의 생각이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 기림비가 시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기림비가 시 관광안내 책자에 포함되도록 할 겁니다. 관광회사나 호텔, 식당 쪽과도 협력하고 기림비 단체 관람 안내가 필요하다면 제가 직접 할 겁니다. 고교생과 대학생을 위한 교육 자료도 펴내고요.”(싱)
릴리언 싱(왼쪽)과 줄리 탕은 둘 다 캘리포니아주 판사로 일하다 지금은 ‘위안부정의연대’ 공동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세계 사람들이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슈”
미국 내에서 ‘위안부’ 이슈에 대한 여론 추이가 궁금했다. 이들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백인 여성이 당한 피해였다면 미국 사회가 더 관심을 쏟았을 것이란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관심이 더 커지고 있어요. 미국에서 지금 ‘흑인 생명이 중요하다’는 운동이 퍼지고 있어요. 아시아 여성의 생명도 중요합니다. (위안부 이슈는) 인종적 요소가 있어요. 난징도 오랜 기간 별로 주목을 못 받았죠. 하지만 오랫동안 홍보해 지금은 많이 알려졌어요. 위안부는 피해자가 여성이고 아시아계라는 이중의 핸디캡이 있죠. 샌프란시스코 기림비는 아시아 여성을 위한 미국 내 첫 동상입니다. (※기림비는 중국·필리핀·한국 소녀가 함께 손을 잡고 있다) 피해 할머니들이 침묵을 깨고 증언했기에 건립이 가능했어요.”(탕) “인종차별 요소를 부인할 순 없어요. 하지만 누구다 다 어머니가 있고 여자 형제·자매가 있어요. 위안부 문제는 전세계 사람들이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슈이죠.”(싱)
탕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을 두고 이렇게 얘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권고하고 싶어요. 한국 이외 다른 나라 피해자들도 포함시켜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요. 그렇게 할 때 피해자들도 정당한 해결이라고 마음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겁니다.”
‘위안부와 같은 야만적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보는가’란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그게 바로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이유이죠. 재발을 막기 위해 젊은이들에게 과거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가르치고 싶었어요.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됩니다.”(탕) “우리도 두려워요. 아베가 평화 헌법을 바꿔 재무장하려고 하잖아요. 일본 시민들이 역사를 잘 몰라요.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과거 잘못이 반복될 수 있어요. 이걸 막고자 (우리가) 활동하는 겁니다. 우리 주장은 전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전쟁도 끔찍한 결과를 낳죠. 특히 여성에게는요.”(싱)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