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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친밀하되 존중 없는 엄마-딸 내면 상처 서로 꼬여 칭칭

등록 2017-09-06 10:21수정 2018-10-15 18:52

‘감정줄’로 푸는 김반아 감성치유사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 토크콘서트를 연 김반아(왼쪽) 박사와 박범준 ‘기억의 책’ 편집장이 활짝 웃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 토크콘서트를 연 김반아(왼쪽) 박사와 박범준 ‘기억의 책’ 편집장이 활짝 웃고 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어머니. 양육에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갖춘 엘리트 어머니였다. 이민 1세대로 브라질과 캐나다에 가서 억척스럽게 살았고 네 자녀를 캐나다, 미국, 영국의 최고 학부에 입학시켰다. 교민 사회는 ‘장한 어머니’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단지 말만 했을 뿐인데도 가슴이 쪼이고 주눅이 들었다. 최근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라는 책을 펴낸 감성 치유사 김반아(71) 박사 가족 이야기다.

김 박사는 지난달 25일 한국을 방문해 서울 마포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 박범준 ‘기억의 책’ 편집장과 함께 ‘엄마와 아이를 위한 행복한 관계 수업’이라는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친정어머니나 딸과의 관계에서 고민이 많은 이들이 강연장을 찾았다. 김 박사를 만나 그가 제시한 감정줄이란 무엇이고, 어머니와의 감정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지 물었다.

“엄마 말이 다 맞아요. 그런데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무슨 영문인지 쉽게 화가 나는 거예요. 엄마와 감정줄이 꼬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반대로 어머니와의 감정줄 문제가 해결되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하버드대에서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박사는 자녀와 어머니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감정줄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가 생각한 감정줄이란 감정의 새끼줄이다. 새끼줄은 짚을 손으로 비벼 말면서 꼰다. 꼬인 짚과 짚을 하나로 꼰다. 팽팽하게 꼬인 두 갈래의 짚은 아랫부분에서 만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풀리지 않는 밧줄이 된다. 감정줄도 이와 비슷하다. 엄마가 자라는 과정에서 받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엄마의 내면에 감정들이 꼬인다. 그렇게 꼬인 감정들은 배우자, 자식, 시댁·친정 식구들을 만나 다시 꼬인다. 감정이 꼬이면서 줄은 팽팽하게 되고, 꼬인 감정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팽팽해진다. 꼬이고 꼬인 감정은 절대로 풀리지 않는 감정의 밧줄이 된다.

김 박사가 말하는 감정줄은 심리학에서 거론되는 감정의 대물림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감정줄로 시각화하니 그 개념이 또렷하게 인식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꼬이고 꼬인 어머니와의 감정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감정줄이 생기는 조건을 알아보자. 김 박사는 ‘존중 없는 친밀감’이 있을 때 감정줄이 생긴다고 말한다. 아무리 자기 딸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아이로서, 자식으로서 인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어머니들은 작게는 자식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일부터 자식의 친구 관계부터 공부, 결혼 생활까지 모든 것을 간섭하고 영역을 침입한다. 이민자였던 김 박사는 캐나다인들이 사는 방식을 보고 한국인들이 자녀에 대해 존중감이 얼마나 부족한지 인식했다.

가깝지만 서로 상처주는 모녀 관계를 벗어나려면 상호 존중감의 회복이 필수적이다. 사진은 모녀가 일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픽사베이 제공.
가깝지만 서로 상처주는 모녀 관계를 벗어나려면 상호 존중감의 회복이 필수적이다. 사진은 모녀가 일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픽사베이 제공.

상호 존중감의 회복, 그것이 감정줄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나를 존중하도록 만들겠다며 무턱대고 어머니에게 다가서면 될까? 김 박사는 “상처받은 나의 내면 치유와 자존감 회복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동안 어머니와 심리적·물리적으로 너무 가까웠다면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어도 되고 상담 전문가나 감성 치유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내 상처 치유를 통해 ‘이미 온전한 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나’, ‘자기 문제를 넘어 다른 사람의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나’를 회복해야 한다. 즉, 내 안의 ‘생명 모성’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이런 작업과 함께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도 해야 한다. 내 어머니가 갖고 있는 문제가 어머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김 박사는 “우리 어머니들은 충만하게 사는 방법을 몰랐다. ‘한’ 많은 어머니의 감정을 대물림받아 또다시 자식에게 되풀이한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범사회적 문제고, 범국가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한국의 모녀 관계가 다른 문화권보다 감정줄로 얽히고설키는 이유는 가부장적 문화가 공고하고, 물리적으로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작은 땅덩어리, 반도라는 지정학적 요소, 4계절의 변화가 많은 자연적 특성 등도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면 모든 문제를 부모 탓으로 돌리는 무의식적인 습관도 중단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부터 어머니와의 관계 치유를 시도해볼 수 있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가서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도 좋고, 어머니에게 서로 존댓말을 써보자고 제안할 수도 있다. 김 박사처럼 어머니에게 감성 독립 선언서를 작성해 보낼 수도 있다.

내 자녀에게 어머니로부터 받은 감정줄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저는 자식들에게 ‘나는 (자식의 영역에 침입하려고 하는) 한국 엄마 바이러스가 있다.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 한국 엄마 바이러스가 널 공격하면 즉시 거울로 비춰줘. 나는 묻지 않고 고마워라고 말할게’라고 선언을 했어요.” 김 박사는 이런 노력을 20년 넘게 기울여 자녀와 가까우면서도 서로에게 충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정기적인 가족회의를 해서 가정 내 규율을 만드는 데 아이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가정 내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내면 상처가 깊으면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도 마비됩니다. 부분밖에 보지 못해요. 상처를 치유하면 뭐에서 뭐까지 해야 되는지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죠. 저는 내면 상처를 치유하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치유한 뒤로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확장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대국(어머니)이 약소국(자녀)에 마음대로 침입하는 것에 반대하고, 분단국가 상황에서 상호 존중하지 않는 것도 반대합니다. 이런 문제들도 다 저의 문제로 보고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지요.”

평화 영성가라는 직함을 가진 그가 왜 모녀 관계 문제에 대한 책을 냈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남녀 모두에게 생명을 품고 키우는 모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 생명 모성을 남녀 모두가 꽃피운다면 가정과 국가는 물론 전 지구적인 질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아버지와 아들은 되레 너무 멀어서 문제”

[함께 토크콘서트 연 박범준 편집장]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그렇게 심각하거나 고통스러울 것이라 생각 못 했어요. 남자들이 보기엔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친구처럼 다정해 보이거든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너무 멀어서 문제라면, 어머니와 딸은 너무 가까워서 문제군요.”

박범준 ‘기억의 책’ 편집장(제주 바람도서관 대표)의 말이다. 김반아 박사가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천착했다면, 박 편집장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이어갔다. 그는 마흔 넘어서 아버지와의 고통스런 관계를 풀어보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

“아버지의 조언, 충고들이 저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취향, 친구 관계, 버릇, 인생의 목표와 같은 것들이요.”

박 편집장은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폭력에 대한 정의도 다시 내렸다.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폭력이라는 것이다. 박 편집장은 다양한 노력 끝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과거보다 좋아졌다.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진 뒤 다른 사회적 관계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가 하고 있는 ‘기억의 책’ 작업도 그의 경험과 연결된다. ‘기억의 책’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구술로 듣고 책으로 펴주는 작업이다. 현재까지 60명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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