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여자가 뭘 알겠나. 밥물도 못 맞춰서 끼니마다 죽 아니면 생쌀인데! 쇼핑과 뷰티 빼고는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가 결혼 1년도 채 안 돼 추석을 맞았으니…”
패션 전문 유통기업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브랜드 ‘자주’(JAJU)가 공식 누리집에 19일치로 게시한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주’ 누리집의 한 코너인 ‘자주엔’ 도시생활 편이다. ‘밥물 못 맞추는 여자’를 ‘아는 게 없는 여자’로 묘사하는 등 성차별적 내용에 누리꾼들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더구나 쇼핑 전문 대기업이 쇼핑하는 여성을 ‘세상 물정 모르는’ 여성으로 표현한 점은 자가당착이다.
이 게시물은 결혼 1년차 부부의 추석 나기를 남편의 시점에서 꾸민 상황극으로, 네 챕터로 이뤄졌다. 챕터 1의 시작은 이렇다. 명절 준비를 하라고 남편이 아내에게 신용카드를 주는데, 이 카드로 한껏 단장한 아내를 보며 남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한다.
“마사지를 받았다, 스킨케어. 손톱을 붙였다, 네일아트. 머리 손질을 했다, 헤어스타일링. 젠장! 뾰족구두는 당연히 샀겠지.”
‘자주’는 인테리어, 가구, 침구, 문구, 주방·요리용품, 여행용품, 아동용품과 함께 의류, 뷰티(스킨케어·미용도구 등) 제품을 팔고 있다. 온라인몰에 구비된 스킨케어 상품과 미용도구만 170여종이다.
두 번째 챕터는 요리가 서툴러 지름 50㎝ 빈대떡을 부쳐 시댁에서 꾸중 듣는 아내의 에피소드다. 추석날 크고 둥근 보름달 모양 빈대떡을 부친 게 무슨 흠이라고, 시어머니가 말한다.
“아들아, 너 혹시 쟤 어디 별에서 따왔드냐?”
추석을 쇤 뒤 “탈모”와 “북어 껍질처럼 까칠한 얼굴”로 ‘명절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아내가 “은근히 꼬수운” 남편은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싶다는 아내의 요청을 무시한다.(챕터 3)
“추석증후군?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밉다, 밉다 했더니 미운 짓을 추가한다. 쪽지 하나를 내밀면서 돈 좀 달란다. 헬스클럽 등록해야 한다면서. 대체 뭐라고 써놓은 거야?”
아내가 쓴 명절증후군 극복 요령 리스트를 ‘개’한테 던진 남편이 급변한다.(챕터 4) 아내가 1년간 모은 돈을 자기 몰래 시댁에 드렸다는 사실을 모친으로부터 들은 순간이다. 남편은 “기쁨에 찬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아내가 보고 싶다. 어여쁜 아내.”
상품의 주목도를 높이려고 만들어졌을 이 홍보물은 실패했다는 의견이 많다. 요즘 쇼핑업체들은 신제품 출시, 할인행사 정보를 ‘공지’하기보다 블로그나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공유’하는 마케팅을 펴는 추세다. 기업이 홍보한다는 느낌을 최소화하고, 개인끼리 상품 정보를 주고받는 듯한 친밀함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쓰이는 기법이 스토리텔링이다. 이 게시물 역시 일러스트와 결합한 스토리텔링으로 꾸며졌다.
“상품을 소개하는지, 여성을 희화화하는지 목적이 헷갈리며”(@derl8***), “명절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치고 너무 식상한”(@soulf****) 이 스토리텔링은 맨 끝에 가서야 홈스파용품, 향초와 침구 등 ‘자주’가 파는 상품을 언급한다. 추천하고 링크를 걸어놓은 상품은 5개, 연관 상품은 8개뿐이다.
한편 ‘자주’는 <한겨레> 보도 당일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면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여성 직원이 70%인 여성친화적 기업이다. 추석 콘텐츠를 섬세하게 검토하지 못한 점, 소비자들께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