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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추석 ‘번개 모임’ 하면 손수 지은 한복 입고 가고파요~”

등록 2015-09-24 18:59수정 2015-09-25 16:15

왼쪽부터 심경아, 심선아, 송은정씨.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왼쪽부터 심경아, 심선아, 송은정씨.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짬] ‘한복 입기 좋은 날’ 카페 동호인 송은정·심선아·심경아 씨
한복 저고리의 무늬가 특이하다. 자세히 보니 만화영화 주인공 캐릭터다.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주인공이다. 단색의 순박한 저고리에 바다 건너온 만화 주인공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런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무릎이 드러나게 짧은 한복 치마도 경쾌한 느낌이다. “동대문시장에 갔더니 마침 이런 한복감이 있더라구요. 어릴 때 즐겨 보던 만화여서 친숙하죠. 옷감을 떠서 직접 만들어 입었어요. 어때요? 이쁜가요?”

주부 송은정(34·맨 오른쪽)씨는 1년 전 인터넷 카페 ‘한복 입기 좋은 날’에 가입했다. 종종 카페 회원들과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길을 나선다. 지난 13일 서울 인사동에 나들이한 이유는 ‘중요무형문화재 119호 금박장’ 김덕환 장인에게 한복에 금박을 입히는 기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한복에 빠져드니 이런저런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다.

경아씨, 웹툰 보고 한복동호회 알게돼
회원 2만여명 카페 운영자로 활약
한달 3~4회 한복 입고 거리 나들이
금박 입히기 배우고 모시짜기 체험도

외국 관광객들 사진찍기 요청 쇄도
“초상권요? 우리문화 알리니 괜찮죠”

송씨는 한복을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녀보니 한복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뀌었다고 한다. “한복이 관리가 어렵다구요? 굳이 세탁소에 맡기지 않아도 돼요. 세탁기로 하거나, 손빨래하면 돼요. 얼룩이 묻어도 물걸레로 쓱쓱 닦아요. 활동하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물론 전통한복이 아닌 생활한복이다.

결혼하며 직장을 그만둔 송씨는 한복을 입고 간편한 디자인의 슬립온 신발이나 운동화를 신고 외출한다. 물론 아직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눈길이 많이 느껴진다. 그런 눈길이 송씨는 나쁘지 않다고 한다. “저를 보고 많은 이들이 한복이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이제 한복은 특별한 날에 입어야 하는 옷이 아니라 입고 놀 수 있는 우리 옷이 돼야 하잖아요.” 송씨에게 한복은 생활이자 놀이의 도구이다. 옷감을 사서, 스스로 디자인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입고 돌아다니며 노는 것이다.

송씨와 같이 한복에 금박 입히기를 배우던 심선아(30·가운데)씨는 봄날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짙은 노란색 저고리에 연한 옥빛 치마를 입었다. 심씨도 직접 옷감을 골라 디자인해서 만들었다. 어릴 때 한복을 좋아해 어머니가 외출하면 몰래 꺼내 입어보곤 했지만 한번도 한복을 지어본 일이 없다. 지난해부터 심씨는 한복을 만들어 입기로 작정하고, 한복 복식책을 사다가 독학했다. 한번도 한복 복식을 배운 적이 없지만 심씨는 한복 옷감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했다. “처음엔 비교적 단순한 디자인으로 한복을 만들었어요. 양장에 비해 평면적인 패턴이라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많은 한복 동호회 회원들이 직접 한복을 만들어 입어요.”

심씨는 얼마 전 인사동에서 열린 한산모시짜기 체험행사에도 참가했다. 심씨도 처음 한복을 입고 길에 나서면 쏟아지는 눈길이 부담스럽곤 했다. 이제는 익숙하다. “고궁에 가면 같이 사진 찍자고 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럴 때면 저도 기분좋게 같이 사진을 찍어요.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아요. 초상권요?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죠.”

심씨는 한복의 장점을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복은 요, 식사를 좀 많이 해도 티가 안 나요. 그래서 마음 놓고 군것질을 할 수 있어요. 또 면 소재로 만들면 물빨래도 가능해 편해요.”

심씨를 한복 동호회로 이끈 이는 바로 심씨의 동생 경아(26·맨 왼쪽)씨. 이날 동생은 자잘한 붉은 꽃무늬가 있는 저고리에 아이보리색 치마를 입었다. 역시 언니인 선아씨가 직접 만든 한복이다. 머리는 한복에 어울리게 단정하게 한갈래로 땋았다. 이전부터 한복에 관심은 많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다가 대학생 때 웹툰 만화 <까치 우는 날>을 보고 한복 동호회를 알게 되었다. 수년간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운영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물론 처음엔 명절 때조차 잘 입지 않던 한복을 평상시에 입으려고 하니 어색했어요. 하지만 한복을 입고 나들이하는 게 점점 즐겁고 자연스러워졌어요. 길거리에서 마주친 어르신들은 감탄을 해요. 곱고 예쁘다고.”

그는 한복을 맞춰 입는 게 부담스러우면 집에 있는 한복을 리폼해 입거나 중고한복을 알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한복은 무조건 고가에 불편하고 관리하기 힘든 옷이 아니에요. 예복으로 고가의 원단을 써서 맞추는 거라면 비싸겠지만 편하게 입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밟히지 않는 기장의 치마, 넓은 말기, 세탁이 편한 원단 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중고한복을 구해서 고쳐 입었어요.”

그가 운영진으로 있는 한복 동호인 카페의 회원은 2만명에 육박한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정모나 수시로 열리는 ‘번개’를 통해 회원들이 크고 작은 만남을 갖기도 한다. 함께 모여 복식사에 대한 공부도 하고, 고궁 나들이, 전시회 관람 등 목적은 다양하다. “회원들에게 한복은 더 이상 텔레비전 사극에서만 보던 옷이 아니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한복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번개 모임’을 준비중인 경아씨는 벌써부터 셀렌다. 얼마 전 손수 만든 한복을 입고 갈 참이기 때문이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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