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아 마웅. 사진 아주대 제공
[짬] 26년째 미얀마 난민 돌보는 의사 신시아 마웅
독재정권 맞서다 결국 타이로 망명
매솟에 병원짓고 난민 진료·교육중
‘올해 일가상’ 수상 위해 한국 방문 “탄압받은 미얀마 난민·이주노동자
잊지 말고 국제사회가 지지해달라” ‘아웅산 수 치’의 나라로도 유명한 미얀마는 군사독재의 나라다.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도 국민들의 합의로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국가 재건에 힘을 기울여오던 중에 1962년 네 윈 장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현재까지 미얀마는 군사독재정권이 집권하고 있다. 신시아 마웅은 “군사정부는 버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모든 산업을 국유화하고 이후 폐쇄정책을 쓰면서 국민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이를 피해서 버마 민중들이 고향을 떠났다가 이제는 버마와 타이 국경을 가르는 강을 따라 6개의 댐을 건설하는 등 각종 개발계획으로 땅을 빼앗겼거나 일자리를 찾아 국경으로,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카렌족 출신인 그는 1985년 양곤대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로 지역 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8년 학생과 지식인, 종교인 그리고 시민들이 군사정부에 대항해 대규모 국민항쟁에 나섰지만 1990년 무력진압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수천명이 숨지면서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타이 국경으로 피신했다. 그 역시 대규모 학살과 검거령을 피해 매솟으로 갔다. 그곳에는 미얀마 난민과 이주노동자, 자기 땅에서 쫓겨난 수십만명의 사람으로 가득 찼다. 그는 “2004년 난민 등이 몰려든 동버마 유아사망률이 인구 1천명당 91명에서 2013년에는 94.2명이었다. 반면 버마는 26.7명, 타이는 11명이었다”고 이들 난민들의 비참한 삶을 설명했다. 또 “동버마 지역의 2013년 어린이 영양실조 비율은 16.8%로 7.9%인 버마에 견줘 2배나 높았다”고 말했다. 난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그는 1989년 매솟에 메따오병원을 세우고 미얀마 난민과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에 나섰다. 난민들이 늘면서 그가 세운 병원도 확대돼 외과, 정형외과, 내과, 산부인과 등 16개 부서에서 526명의 의사, 상담요원 등이 하루 400~500명, 한해 14만여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지만, 의료인력과 약품 부족 등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했다. 신시아 마웅은 타이, 미얀마 국경마을의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한 의료종사자 양성 교육과 훈련, 국경지역의 어린이를 위한 학교교육과 인권 보호 및 신장 운동에서 더 나아가 미얀마의 민주화와 민주화 이후의 사회를 유지할 대안적인 인적·지적·사회적 자원을 위한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국경지역과 미얀마 내륙지역에서 땅을 빼앗겨 쫓겨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쌀과 콩, 식용유 등을 지원하면서 공부를 돕고 있다. 미얀마 접경지역에서 사반세기에 걸친 의료봉사와 꾸준하고 헌신적인 삶으로 그는 ‘미얀마의 마더 테레사’로 불린다. 이날 1시간30여분에 걸친 강연이 끝날 무렵, 그는 “수많은 이들 버마 난민들과 땅을 잃은 사람들, 이주노동자들은 분명히 희생자이지만 동시에 이들이야말로 미래 버마를 이끌어갈 희망이며 상징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간곡하게 호소했다. “이들이 스스로를 이끌 역량을 키우고 그래서 미얀마의 정치개혁과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을 희망합니다.” 수원/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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