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즈그가 몹쓸 짓 해놓고 안 했다카니 원통해서 눈을 감겠나…”

등록 2015-03-19 14:38수정 2015-03-20 16:02

김복득 할머니는 최근 2년 사이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 할머니의 2년 동안 변화된 모습. 왼쪽부터 2013년 3월 14일, 2014년 12월 14일, 2015년 2월 7일, 2015년 3월 18일.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복득 할머니는 최근 2년 사이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 할머니의 2년 동안 변화된 모습. 왼쪽부터 2013년 3월 14일, 2014년 12월 14일, 2015년 2월 7일, 2015년 3월 18일.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포토 스토리]
‘위안부 피해’ 최고령 생존자 김복득 할머니의 평생 소원
22살 공장 취직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7년 간 고초 겪어
건강 악화로 중환자실·일반병동 오가며 하루하루 버텨
“일본이 사과를 하면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겠습니더”
<한겨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최고령 생존자인 경남 통영의 김복득 할머니를 2013년 봄부터 사진에 담았다. 지역에서 위안부 생계비 지원금 등으로 모은 재산을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으로 나눠주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김 할머니는 최근 치매와 관절염 등 노환으로 중환자실과 일반병동을 오가고 있다. 2015년 현재,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됐던 238명 중 생존자는 53명이다. 올해 들어서만 두 분이 돌아가셨다. “일본이 사죄를 해야 죽어도 눈을 감겠다”는 김복득 할머니는 오늘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두 손으로 감싸 쥔 할머니의 손이 경련하듯 덜덜덜 떨린다. 입술도 마찬가지. 아흔일곱해를 버텨준 할머니의 몸은 이제 뜻대로만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지난 달 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지역의 청소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찾아왔을 때에도 할머니는 무척 힘겨워했다. 아흔일곱 해를 상징하는 초들이 하얀 케이크 위에서 불을 밝혔지만 기력이 쇠한 할머니는 혼자 힘으로 그 촛불을 불어 끄지 못했다. 97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2월 7일 오후 김 할머니가 요양 중인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병원을 찾은 통영·거제 지역 청소년들이 할머니와 함께 생일 케이크 촛불을 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7일 오후 경남 통영시 도산면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에서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 등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쳐온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 송도자 대표와 회원들, 지역 고등학생들의 97세생신 축하를 받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7일 오후 경남 통영시 도산면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에서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 등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쳐온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 송도자 대표와 회원들, 지역 고등학생들의 97세생신 축하를 받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최고령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97)가 2014년 12월 14일 오후 13개월째 입원중인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노인전문병원에서 간병인이 먹여주는 죽을 먹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최고령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97)가 2014년 12월 14일 오후 13개월째 입원중인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노인전문병원에서 간병인이 먹여주는 죽을 먹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918년 경남 통영 태평동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21세가 되던 1939년 통영극장 앞에서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일본인 말에 속아 배를 탔다. 부산을 거쳐 중국에 도착한 할머니는 대련에서 3년, 다시 필리핀으로 끌려가 4년간 고초를 겪었다.

“그리 배타고 끌려가 한 고생은 말도 몬합니더. 억장이 무너져서 눈물도 한 방울 안 나오지요. 헤엄도 몬하는데 죽을 기라고 (바다에) 걸어서 들어갔어요. 물이 이만치 차오르는데 죽지도 몬하고. 억울한 이 마음이 죽을 때까지 안 낫지 싶어요.”

그 모진 세월을 지나 할머니는 1945년 해방 무렵에야 필리핀에서 군함을 타고 귀향길에 오른다.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거치는 긴 여정 끝에 고향 통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난 2013년 3월 통영시 북신동 자택을 찾아 김복득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날,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은 채 혼자 힘으로 걸어 중앙시장 어귀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구불구불 좁다란 골목길을 걸어 할머니의 집까지 가는 동안, 할머니는 두어 번 주저 앉아 쉬어야 했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백발이 된지 오래된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다시 흑발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오른쪽부터)와 양노자 인권팀장이 2013년 3월 10일 경남 통영시 북신동 자택으로 할머니를 방문해 핸드폰 없이 마실 나선 할머니를 마을 어귀에서 만나 반가워하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오른쪽부터)와 양노자 인권팀장이 2013년 3월 10일 경남 통영시 북신동 자택으로 할머니를 방문해 핸드폰 없이 마실 나선 할머니를 마을 어귀에서 만나 반가워하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가들과 담소를 나누던 끝에 할머니께 혹시 젊은 시절 사진이 있으신지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다 잃어버리고 한 장 남았다며 서랍을 열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신다. 곱게 기모노를 차려 입고 찍은, ‘후미코’라 불리던 시절의 초상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조사를 위해 방한해 이날 김 할머니를 만난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학교 교수는 조심스레 그 사진을 촬영했다.

김복득 할머니가 2013년 3월 14일 경남 통영시 북신동 자택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나흘 전 증언 수집차 방한한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할머니의 단칸방을 찾아 과거 사진이나 자료가 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다 잃어버리고 이것 한 장 남았노라고, ‘후미코’로 불리며 고초를 겪던 시절에 찍힌 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당시 할머니는 위안소가 쉬는 날에도 일본군들에게 위로공연을 펼치기 위해 기모노를 차려입고 외출해 춤과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죽지 않기 위해 할머니는 시키는대로 했었노라 말씀하셨다. 그 시절 할머니 모습에 먹먹해진 손님들은 “할머니 참 고우셨네요”라고 말할 수밖에. 그 마음들을 품어내듯 할머니가 환히 웃어주신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복득 할머니가 2013년 3월 14일 경남 통영시 북신동 자택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나흘 전 증언 수집차 방한한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할머니의 단칸방을 찾아 과거 사진이나 자료가 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다 잃어버리고 이것 한 장 남았노라고, ‘후미코’로 불리며 고초를 겪던 시절에 찍힌 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당시 할머니는 위안소가 쉬는 날에도 일본군들에게 위로공연을 펼치기 위해 기모노를 차려입고 외출해 춤과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죽지 않기 위해 할머니는 시키는대로 했었노라 말씀하셨다. 그 시절 할머니 모습에 먹먹해진 손님들은 “할머니 참 고우셨네요”라고 말할 수밖에. 그 마음들을 품어내듯 할머니가 환히 웃어주신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대협 활동가들이 2013년 3월10일 경남 통영 자택을 찾은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와 기념사진 찍어주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대협 활동가들이 2013년 3월10일 경남 통영 자택을 찾은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와 기념사진 찍어주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제 할머니의 단정한 삶을 닮은 정갈하고 소박했던 그 집은 없다. 2013년 가을 할머니는 살림을 정리해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병인 신경통과 관절염이 심해져 더 이상 홀로 지내기 어려워졌던 탓이다. 상태는 호전되는 듯 싶었고 2014년 여름, 할머니는 조금 더 나으면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2014년 겨울에 만난 할머니의 상태는 훨씬 위중해 보였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아직도 버텨내는 중이다. 송도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대표’는 “할머니께서 늘 내 동생들(다른 피해자) 일본의 사죄도 못 받고 다 죽었다. 내가 이 일을 해야 한다 말씀하셨다”며 사명감으로 이겨내고 계신 듯 하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학생들이 돌아간 뒤 송 대표는 할머니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다 귓가에 속삭인다.

“어머니, 이제 곧 봄이 와요. 다시 기운 차리셔야지요.”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송 대표의 뺨에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2014년 7월 22일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노인전문병원 병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여는 노래자랑대회에 구경가기 위해 할머니가 입술연지를 바르며 곱게 화장하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14년 7월 22일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노인전문병원 병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여는 노래자랑대회에 구경가기 위해 할머니가 입술연지를 바르며 곱게 화장하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14년 7월 22일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노인전문병원 병실에서 할머니가 오랫만에 만난 기자에게 손들어 인사하며 반겨주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14년 7월 22일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노인전문병원 병실에서 할머니가 오랫만에 만난 기자에게 손들어 인사하며 반겨주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복득 할머니는 지금 고단했던 삶의 끝자리에 서 있다.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도, 제대로 말하지도 못한다. 산책은 커녕, 욕창을 막기 위해 누운 몸을 뒤척이는 일도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예전의 그 환한 웃음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할머니를 대신해 누가 언제 물어도 한결 같았던 그의 평생소원을 전한다.

“일본이 사과를 한다면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하겠습니더. 우리는 했다카고, 즈그는 안했다카고 그게 원통해서. 일본이 사죄를 해야 죽어도 눈을 감겠다, 내 해원을 풀어주는 게 그게 제일 아니겠습니꺼.”

통영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온 송도자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가 2월 7일 김복득 할머니가 입원중인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노인전문병원을 찾아 잠든 할머니를 쓰다듬으며 쾌유를 빌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통영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온 송도자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가 2월 7일 김복득 할머니가 입원중인 경남 통영시 도산면의 한 노인전문병원을 찾아 잠든 할머니를 쓰다듬으며 쾌유를 빌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최고령 생존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18일 오후 경남 통영시 도산면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 병실에서 음식물 섭취를 위해 연결한 호스를 한 채 누워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최고령 생존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18일 오후 경남 통영시 도산면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 병실에서 음식물 섭취를 위해 연결한 호스를 한 채 누워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통영/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영상·편집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