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달 30일 서울대 83동 강의실에서 열린 ‘일하는 여성을 위한 돌봄과 공존의 여성학’ 강좌에서 100여명의 수강생을 상대로 ‘영화를 통해 보는 여성의 삶’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 ‘돌봄·공존의 여성학’ 강좌
여성노동자 육아·직장 성차별…
현실 문제에 여성학적 해결 모색
* 빵 : 생존, 장미 : 인권
여성노동자 육아·직장 성차별…
현실 문제에 여성학적 해결 모색
* 빵 : 생존, 장미 : 인권
“어휴, 진상이다. 진상!”
수군대는 야유가 바로 터져나왔다. 일을 그만두라는 남편의 성화에 부인 최명길이 계속 “생각중이다”고 하자, 이영하가 “자칫하면 (나) 폭력 쓸지도 몰라”라는 말을 한 뒤였다.
지난달 30일 서울대 한 강의실에서 열린 ‘일하는 여성을 위한 돌봄과 공존의 여성학’ 강좌. 1986년 영화 <안개기둥>의 장면들이 스크린에 비춰졌다. “1970년대 후반부터 중산층의 딸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도 일을 하겠다는 꿈은 있었지만, 직장과 가정생활을 같이 하기란 당시에 쉽지 않았다.” 이남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이 시대별로 세 편의 영화를 보여주며 설명하자, 2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100여명의 수강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수업을 듣던 문성자(66)씨도 “우리 때는 정말 저랬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러면 2000년대를 사는 이들에게 영화는 호기심만의 대상이었을까? 강의 뒤 한 수강생은 “‘빵과 장미’를 (그가 속한) 조의 이름으로 삼았다”며 “지금도 빵(생존)과 장미(인권)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지난 2월, 한국에서는 13만9000여명의 여성이 일자리를 잃었다. 전체 취업 감소 인원 가운데 여성이 98%를 차지했다.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러나 장미도 원한다’는 말은 1908년, 미국 뉴욕 방직공장에서 남성에 비해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서 나온 구호였다.
이 강좌의 첫번째 강의를 맡았던 배은경 서울대 교수(여성학 협동과정)은 “경제위기일수록 여성학이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훌륭한 노동자가 되면, 훌륭한 어머니가 되기 힘들다. 직장과 가정에서 여성은 굉장히 힘들게 살고 있는데, 막상 이들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문화적 자원이 없다.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배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성은 언제나 해고의 위험 등에 체념하기 쉽다. 여성학을 통해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한다면 노동 현장에서 더 버티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혜란 서울대 여성연구소장은 “현실에서 겪는 육아나 성차별 등을 여성이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해 우울이나 정서장애 등으로 좌절하기 쉬운데, 이것은 사실 모든 여성들이 공유하는 문제다. 이번 강좌를 통해 작게는 일상에서 성차별을 거부하고, 사회적 활동으로 연대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부터 시작해 모두 15번의 강의로 구성된 이번 강좌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처음으로 지원한 ‘일하는 여성을 위한 여성학 강좌’다. 조국 교수(법학) 정진성 교수(사회학) 우희종 교수(수의과대) 등 다양한 학문의 ‘스타급’ 강사가 나섰고, 수강료도 무료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개강 전부터 인기가 치솟았다. 애초 50명 정원으로 하려다 160여명이 신청을 해 강의실까지 바꿨지만, 결국 50여명은 돌려보냈다고 한다. 전업주부로 지내다 3년 전 다시 일을 시작했다는 오선화(51)씨는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삶을 적극적으로 살자고 마음먹고 듣고 있는데, 강의가 앞으로 기대가 많이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
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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