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마녀사냥을 멈춰라” 온라인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 긴급 토론회가 8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저들의 주장대로 내가 은근슬쩍 혐오 표현을 넣었다면, 내가 작업한 그림에만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작업하지 않은 그림, 내가 입사하기도 전 그림에서 ‘혐오 표현’을 발굴해 내고 있다. 지금도 실체하지 않는 혐오 표현을 수정하느라 많은 인력이 낭비되고 있다.”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 ‘집게손가락’ 모양을 넣었다며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은 애니메이터 ㄱ씨는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관련 긴급토론회에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
ㄱ씨는 이날 토론회에 보낸 편지에서 “페미니즘은 성평등을 위하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지 누군가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행위가 아니“라며 “(기업은) 더이상 논리에 맞지 않는 소수의 악성 민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게임업계 등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대응하기 위해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과 한국여성민우회, 한국게임소비자협회, 전국여성노동조합, 정의당 여성위원회 공동주최로 열렸다.
전문가들은 이 자리에서 일부 이용자들의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기업이 동조하면서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사내에서 페미는 잘라야 한다는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페미니즘 사상검증의 피해는 여성노동자뿐 아니라, 작품을 제작한 남성노동자, 만든 작품을 폐기해야 하는 다른 노동자, 주말에도 작품을 전수조사해야 하는 넥슨 직원에게도 끼친다”고 지적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은 2016년부터 지난 5일까지 콘텐츠업계로부터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피해 사례를 제보받은 결과, 83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일부 악성 이용자들의 요구→기업의 수용’이 반복되면서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백래시 수위도 거세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2016년 넥슨이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은 성우를 교체하는 등 백래시 집단의 요구를 수용한 이후 “여성노동자에 대한 탄압의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홍보영상 속 (집게 손 모양이) 0.1초 정도 등장하는 장면 때문에 발생했다”며 “게임업계 안에서 페미니즘 백래시가 용인되는 경험이 점점 쌓이고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토론회에선 기업이 악성 이용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노동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국장은 2016년 넥슨이 남성 이용자들의 요구로 ‘소녀는 왕자님이 필요하지 않아’(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성우를 교체한 사건을 언급하며 “넥슨이 시작한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다시 넥슨으로 돌아왔다”며 “회사는 이용자들의 무리한 요구를 중단하고 노동자들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하경 변호사는 “노동자를 비난하는 외부 여론이 있다고 해서 사용자가 불이익 처분하는 건 법률상 허용되지 않고, 사용자는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오히려 위계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가해자(악성 유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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