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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여성들, 기회 생기면 같은 구호 아래 또 목소리 낼 것”

등록 2023-10-16 10:00수정 2023-10-16 10:18

[짬] 책 ‘아직, 메갈리안’ 쓴 이원윤 작가
책 ‘아직, 메갈리안’을 쓴 이원윤 작가. 이원윤 작가 제공
책 ‘아직, 메갈리안’을 쓴 이원윤 작가. 이원윤 작가 제공

‘남자가 조신하게 살림해야지’ ‘몽정해? 왜 이렇게 예민해?’

이 말이 낯선 이유는 청자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 말이 익숙한 이유는 말의 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조신하게 살림해야지’ ‘생리해? 왜 이렇게 예민해?’ 그동안 일상에서, 미디어에서 숱하게 흘러다녔던 말들이다.

청자가 바뀌자 성차별의 사회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메갈리안(메갈리아에서 활동한 여성을 일컫는 말)은 2010년대 중후반 이런 ‘미러링’(거울로 비춰 보여주는 것) 방식으로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효과적으로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김치녀’엔 ‘한남충’으로, ‘창녀’엔 ‘창남’으로, ‘시집살이’는 ‘대리효도’로, 메갈리안이 받아친 언어에 사회와 남성들은 당황했다.

활동가·관찰자이자 인류학자로
메갈리아 운동 사회문화적 분석
“당시엔 여성혐오 심각성 부각 중요
남성에 과격 발언 그대로 되돌려줘
자신의 논리와 싸우게 미러링 구사”

여성의 안전한 발언 장소에 매료
폐쇄에도 메갈리안 여성운동 계속

“메갈리안의 미러링 전략은 언어적으로든 사회적 문화적으로든 센세이셔널했다. 미러링 자체가 남성들의 발언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이기에, 미러링 하는 여성들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은 자신이 만든 논리 구조와 싸워야만 했다.”

당시 메갈리안으로 활동했던 이원윤씨는 ‘미러링’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씨는 지난달 메갈리안의 운동을 사회문화적으로 분석한 책 ‘아직, 메갈리안’(이프북스)을 냈다. 책은 이씨가 하버드 대학에서 의료인류학 석사 학위 취득 당시 작성한 영어 논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참여자·관찰자 경계 없이 한 집단의 문화를 관찰하는 인류학적 연구방법인 ‘에스노그라피’ 방법으로 기록했다.

책은 ‘일간베스트’(일베)와 메갈리아의 과거 텍스트들을 분석하면서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일베의 여성혐오는 무엇인지, 메갈리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미러링의 언어학적 구조와 사회문화학적 효과, 정치적 의미를 풀어냈다. 의사인 이씨는 현재 뉴욕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를 수련하고 있으며, 페미니즘과 인류학, 정신건강에 대한 글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다.

“메갈리아의 역사는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당시 활동이 ‘과격하다’, ‘남성혐오 사이트다’ 등 왜곡된 기록만 남아 있다. 그래서 활동가이자, 관찰자이자, 학자로서 당시 메갈리안의 의미를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메갈리아’는 2015년 영페미가 주축이 돼 만든 커뮤니티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갤러리’와 남녀의 성 역할을 뒤집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합친 말이다. 당시 메르스가 한국에서도 발병됐는데, 첫 확진자가 홍콩여행을 다녀온 여성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나오면서 일베 같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혐오 글이 번졌다. 이에 디시인사이드 내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여성 회원들이 반발했고, ‘메갈리아’라는 별도의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2017년 메갈리아는 폐쇄됐으나, ‘메갈=페미니스트’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2010년대 중후반 메갈리안의 운동은 뜨겁고 격렬했다.

이씨도 격렬한 메갈리아 운동에 동참했다. “메갈리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사이트를 방문했다가 빠져들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불편하다고 느꼈지만 왜 불편한지 언어화하지 못했던 것들이 메갈리아 안에서 설명됐기 때문이다. 메갈리아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발언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이씨가 말했다. 메갈리안의 활동은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고, 메갈리안들은 경찰이 게시한 ‘몰래카메라 주의’ 광고 위에 ‘몰래카메라 금지’라고 수정하기도 했다.

메갈리안으로 활동하던 이씨는 강남역 살인 사건이 벌어진 2016년, 남성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을 마녀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분노했다. 이씨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한국에서 성폭행을 당한 호주 여성 여행객을 도왔을 때다. “호주 방송에 출연해 ‘한국의 강간문화’에 대해 인터뷰했다. 이후 일베 등에 나에 대한 악성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그중 20~30명 정도를 고소했다. 합의 조건은 나와 대면해 자신들이 작성한 글을 입 밖으로 소리 내 읽도록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한 짓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성혐오와 성차별을 제재하고 처벌하려는 여성이 있다는 걸을 알려주고 싶었다.”

일부는 메갈리안의 저항 방식이 과격하고, 성별 갈등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씨는 메갈리안의 언어가 나온 사회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갈리아는 여성혐오의 과격함과 남성들이 저지른 범죄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거울이 정제해서 보여주는 건 여성혐오를 정제해서 보여주는 것과 같다. 당시 메갈리아는 여성혐오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심각한지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했다. 여성혐오도 나쁘고 남성혐오도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주 쉬운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번 책에서도 일베와 메갈리아의 날 선 언어들을 그대로 옮겨 분석했다. 이씨는 “메갈리안이 여성혐오를 정제하지 않고 모방해 비난을 받으면서, 되레 다른 여성들이 발언하고 활동할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와 성차별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조차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하고, 정부는 여성폭력이 아닌 ‘폭력’으로 단순화한다. 이씨는 “페미니즘 탄압이야 늘 있었던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기 때문에 특별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메갈리아 사이트는 폐쇄됐지만, 메갈리안들은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계속 여성 운동을 하고 있다. 여성들은 기회가 생기면 또다시 같은 구호 아래 모여서 목소리를 낼 것”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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