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편집장인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가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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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안전벨트를 똑같이 착용하더라도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남성의 상반신을 기준으로 안전벨트의 범위가 연구되고 설계했기 때문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막달레나 스키퍼 편집장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성별 특성을 반영한 과학기술 연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런 예를 들어 설명했다. 스키퍼 편집장은 네이처 창간 154년 역사상 첫 여성편집장으로, '성별 분석을 통한 과학 연구 우수성 향상'을 주제로 5일 열리는 ‘네이처 포럼’에 참석차 한국에 방문했다. ‘성별 분석’이란 의학·생물학 등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의 특성을 고려하는 연구를 뜻한다. 성별은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인 젠더를 포괄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스키퍼 편집장은 그동안 과학기술 연구가 남성·유럽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연구는 전 세계의 일부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전체에 대한 이해를 가지려면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측면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성별, 나이, 인종, 민족 등 다양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별 차를 반영하지 못한 연구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영향을 끼친다. 그는 “군이나 경찰에서 사용하는 방탄조끼도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여성군인이나 여성경찰에게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음성인식의 경우에도 남성 데이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여성보다 남성의 음성 인식 정확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신약 연구가 남성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약 투여량 등에서 차이가 있는 여성은 약물 효과를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네이처는 특정 성별에 편중적인 연구 관행을 개선하고자, 지난해 5월 ‘연구에서의 성별 보고 기준을 강화하는 편집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엔 성별 특성을 반영 여부를 표시하는 체크리스트가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연구에 하나의 성별만을 포함하거나 연구 결과가 한 성별에만 적용되는 경우 논문 초록과 제목에 이를 명확히 드러냈는지, 연구설계에서 성과 젠더가 어떻게 고려되었는지 등이 체크하는 것이다.
스키퍼 편집장은 이런 지침을 만든 이유에 대해 “그동안 연구에서 성과 젠더 부분이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어, 네이처에 투고하는 저자들에게 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줘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며 “성과 젠더와 관련된 내용이 연구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연구자들을 독려하자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데이터를 분석 시에도 성과 젠더를 나눠 보고·분석할 수 있도록 이를 강제하기 위해서”고 말했다. 이런 노력은 약 10년 전부터 진행해왔으며 그 결과물이 지난해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응용 연구뿐 아니라 기초 연구에 있어서도 생리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포 단위 연구나 동물연구, 그리고 발달이나 생리학적 연구에서도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3 노벨 생리의학상(
카탈린 카리코)과 물리학상(
앤 뤼리에)을 여성이 수상한 것에 대해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그는 “과거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거의 남성이었다. 네이처에서도 ‘노벨상 수상자 평가단이 더 다양해져야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노벨상이 수여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면서 “(다양성 측면에서) 노벨상이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과학 분야도 인정받는 시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성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과학기술계를 바꿀 근본적인 방법은 “여성 인력의 진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여성 비율은 30% 정도인데, 네이처 창간 당시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된 부분”이라면서도 “더 많은 여성 연구자들이 활동할수록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혁신센터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네이처 포럼은 막달레나 스키퍼 편집장이 네이처의 성별 특성 반영한 편집 정책과 성별 분석 연구의 타당성 등에 대해 기조연설을 한다. 또 니라오 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카렌 루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김은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박성미 고려대 교수 등이 강연에 나선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