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여성 창업자 김하나·사라 샤피· 벤야 스티그 파겔란드 대표
‘91.4% 대 8.6%’.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중 남성과 여성 창업자가 투자 유치에 성공한 비율이다. 지난 2월7일 스타트업 미디어인 스타트업레시피가 발표한 ‘투자리포트 2022’를 보면, 지난해 투자유치 총 1480건 가운데 여성 창업자가 투자를 받은 사례는 120여건에 불과했다. 투자액으로 따지면, 10조8271억원 중 4947억원만이 여성 창업자 기업에 투자됐다. 여성이 이끄는 기업은 왜 투자받기 어려울까?
115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8일, 주한 북유럽대사관(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이 공동으로 서울 공덕동 서울창업허브에서 ‘여성 창업 활동에서의 성 격차’ 주제로 노르딕토크 코리아 행사를 열었다. <한겨레>는 토크쇼에 앞서 이날 연사로 참여한 김하나 와이즈업 대표(한국)·사라 샤피 다이버스(DivERS) 대표(덴마크)·벤야 스티그 파겔란드 <쉬코노미> 대표(노르웨이)를 함께 인터뷰했다.
‘세계 여성의날’ 주한북유럽대사관
‘노르딕토크 코리아’ 토크쇼 연사들 한국 영상콘텐츠기업 김하나 대표
“남성 직원과 동행할 때 대접 달라” 덴마크 정보기술업 사라 샤피 대표
“여성엔 경쟁률 높은 공공펀딩 유리” 노르웨이 플랫폼 벤야 파겔란드 대표
“리더십 다양한 기업 수익성 높아” 이날 세 사람은 투자 유치부터 기업 운영까지 모든 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사업과 무관한 질문을 받는가 하면, 투자심사역 다수가 남성인 탓에 여성과 관련된 사업 아이템은 관심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샤피 대표도 투자 심사를 받을 때 비슷한 일을 겪었다.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인 스타트업 10곳 중, 샤피 대표와 다른 여성 대표만 ‘출산 뒤 어떻게 기업을 운영할 건가’와 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다. 반면 남성 대표들은 미래 비전과 성장 계획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받았다. 샤피 대표가 2021년부터 운영해온 ‘다이버스’는 채용 과정에서 성별·나이·인종 등의 편향성을 제거해 고용의 질을 향상하는 데이터 기반 기술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는 이 사업 아이템으로 민간 부문의 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그는 공공 펀딩으로 노선을 틀었다. 그는 “민간 투자는 투자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공공 펀딩의 심사 기준은 더 객관적이고 엄격하다. 공공 펀딩이 경쟁률은 더 높지만 여성 창업가인 내게는 공공 펀딩이 더 유리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을 운영할 때도 여성 창업가들은 ‘대표’가 아닌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를 마주한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와이즈업’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온·오프라인 영상 콘텐츠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김 대표는 ‘어린 여성 아이티(IT)기업 대표’를 바라보는 편견 섞인 시선을 종종 느낀다. 그는 “고객사 미팅에 남성 직원과 동행할 때와 저 혼자 갔을 때는 분위기부터 다르다”며 “‘여성이 대표로 있는 아이티 회사’라는 프레임이 작용하는 탓인지 불신을 깔고 질문하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에서 여성 리더로 손꼽히는 파겔란드 대표도 기울어진 기업 생태계에선 ‘주류’가 아니다. 그가 한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여했을 때다. 사회자는 파겔란드 대표를 소개하며 그의 이력이 아닌 ‘5일 전 딸을 출산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파겔란드 대표는 “‘나는 리더로서 왔지, 어머니로서 참석한 게 아니다’라고 바로 잡았지만, 정말 황당했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 기업의 다양성 책임(CDR)을 가속하는 글로벌 플랫폼 <쉬코노미>를 운영하는 그는, 2003년 노르웨이가 ‘여성 이사 할당법’을 처음 시행할 때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차별은 여성 창업가의 사업 확장과 성공을 가로막는다. 그 때문에 남성 중심의 창업생태계는 더욱 견고해진다. 여성 창업 준비생들은 ‘롤모델’이 없는 창업생태계를 지켜보며 위축될 수밖에 없다. 파겔란드 대표는 “남성 중심의 창업 문화 속에서는 여성의 성공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성 창업가는 ‘롤모델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사회적 네트워크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으며’ ‘차별적 시선을 겪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 유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실 여성 창업가의 도전을 막는 장벽은 출산과 육아다. 김 대표는 “여성 창업가가 적은 이유는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고, 공공보육시스템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서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5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2년 여성기업실태조사’에서도, 여성 기업인이 불리한 점으로 ‘일·가정 양립 부담’(51.2점)이 가장 높게 집계됐다. 이들은 성차별적 환경을 개선해, 여성 창업가에게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겔란드 대표는 “리더십의 다양성은 기업 문화를 강화하고 경영에서의 의사결정을 개선할 수 있는 요소”라며 “이는 당연히 수익성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2018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펴낸 보고서를 보면, 여성 창업 기업은 남성 창업 기업보다 투자금액 1달러당 2배의 수익을 냈다. 소비자의 절반인 여성을 위해서도 여성 창업가는 필요하다. 샤피 대표는 “다수의 서비스나 제품은 남성 소비자에 맞춰져 있다. 심지어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제품을 만들 때도 남성이 여성을 떠올리며 개발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여성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개발할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에 여성이 없다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여성의 창업 문턱을 낮추기 위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샤피 대표는 “투자 유치 과정부터 공정하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패널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성별·출신 등의 익명화 등을 예로 들었다. 파겔란드 대표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적 사고를 깰 수 있도록 공공 차원에서 실질적 데이터 개발과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양육·돌봄의 책임을 여성이 일방적으로 지는 구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회 전반에 깔린 성차별적 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필수다. 샤피 대표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교육과 사회 분위기도 여성의 도전을 가로막는다”며 “어린 아이일 때부터 여성은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고 했다. s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왼쪽부터 김하나 와이즈업 대표, 사라 샤피 다이버스 대표, 벤야 스티그 파겔란드 쉬코노미 대표. 주한 덴마크대사관 제공
‘노르딕토크 코리아’ 토크쇼 연사들 한국 영상콘텐츠기업 김하나 대표
“남성 직원과 동행할 때 대접 달라” 덴마크 정보기술업 사라 샤피 대표
“여성엔 경쟁률 높은 공공펀딩 유리” 노르웨이 플랫폼 벤야 파겔란드 대표
“리더십 다양한 기업 수익성 높아” 이날 세 사람은 투자 유치부터 기업 운영까지 모든 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사업과 무관한 질문을 받는가 하면, 투자심사역 다수가 남성인 탓에 여성과 관련된 사업 아이템은 관심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샤피 대표도 투자 심사를 받을 때 비슷한 일을 겪었다.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인 스타트업 10곳 중, 샤피 대표와 다른 여성 대표만 ‘출산 뒤 어떻게 기업을 운영할 건가’와 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다. 반면 남성 대표들은 미래 비전과 성장 계획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받았다. 샤피 대표가 2021년부터 운영해온 ‘다이버스’는 채용 과정에서 성별·나이·인종 등의 편향성을 제거해 고용의 질을 향상하는 데이터 기반 기술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는 이 사업 아이템으로 민간 부문의 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그는 공공 펀딩으로 노선을 틀었다. 그는 “민간 투자는 투자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공공 펀딩의 심사 기준은 더 객관적이고 엄격하다. 공공 펀딩이 경쟁률은 더 높지만 여성 창업가인 내게는 공공 펀딩이 더 유리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을 운영할 때도 여성 창업가들은 ‘대표’가 아닌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를 마주한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와이즈업’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온·오프라인 영상 콘텐츠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김 대표는 ‘어린 여성 아이티(IT)기업 대표’를 바라보는 편견 섞인 시선을 종종 느낀다. 그는 “고객사 미팅에 남성 직원과 동행할 때와 저 혼자 갔을 때는 분위기부터 다르다”며 “‘여성이 대표로 있는 아이티 회사’라는 프레임이 작용하는 탓인지 불신을 깔고 질문하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에서 여성 리더로 손꼽히는 파겔란드 대표도 기울어진 기업 생태계에선 ‘주류’가 아니다. 그가 한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여했을 때다. 사회자는 파겔란드 대표를 소개하며 그의 이력이 아닌 ‘5일 전 딸을 출산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파겔란드 대표는 “‘나는 리더로서 왔지, 어머니로서 참석한 게 아니다’라고 바로 잡았지만, 정말 황당했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 기업의 다양성 책임(CDR)을 가속하는 글로벌 플랫폼 <쉬코노미>를 운영하는 그는, 2003년 노르웨이가 ‘여성 이사 할당법’을 처음 시행할 때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차별은 여성 창업가의 사업 확장과 성공을 가로막는다. 그 때문에 남성 중심의 창업생태계는 더욱 견고해진다. 여성 창업 준비생들은 ‘롤모델’이 없는 창업생태계를 지켜보며 위축될 수밖에 없다. 파겔란드 대표는 “남성 중심의 창업 문화 속에서는 여성의 성공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성 창업가는 ‘롤모델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사회적 네트워크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으며’ ‘차별적 시선을 겪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 유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실 여성 창업가의 도전을 막는 장벽은 출산과 육아다. 김 대표는 “여성 창업가가 적은 이유는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고, 공공보육시스템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서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5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2년 여성기업실태조사’에서도, 여성 기업인이 불리한 점으로 ‘일·가정 양립 부담’(51.2점)이 가장 높게 집계됐다. 이들은 성차별적 환경을 개선해, 여성 창업가에게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겔란드 대표는 “리더십의 다양성은 기업 문화를 강화하고 경영에서의 의사결정을 개선할 수 있는 요소”라며 “이는 당연히 수익성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2018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펴낸 보고서를 보면, 여성 창업 기업은 남성 창업 기업보다 투자금액 1달러당 2배의 수익을 냈다. 소비자의 절반인 여성을 위해서도 여성 창업가는 필요하다. 샤피 대표는 “다수의 서비스나 제품은 남성 소비자에 맞춰져 있다. 심지어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제품을 만들 때도 남성이 여성을 떠올리며 개발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여성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개발할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에 여성이 없다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여성의 창업 문턱을 낮추기 위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샤피 대표는 “투자 유치 과정부터 공정하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패널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성별·출신 등의 익명화 등을 예로 들었다. 파겔란드 대표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적 사고를 깰 수 있도록 공공 차원에서 실질적 데이터 개발과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양육·돌봄의 책임을 여성이 일방적으로 지는 구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회 전반에 깔린 성차별적 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필수다. 샤피 대표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교육과 사회 분위기도 여성의 도전을 가로막는다”며 “어린 아이일 때부터 여성은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고 했다. s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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