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열명 중 다섯명은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직후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정부 조사 결과 나왔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인식이 최근 더 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한겨레>가 확인한 여성가족부의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초안)을 보면, ‘성폭력 관련 인식·통념’ 조사 항목에서 응답자 52.6%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피해 후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답했다.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고 답한 비율도 46.1%에 달했으며, 이어 ‘금전적 이유나 상대에 대한 분노, 보복심 때문에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39.7%),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32.1%), ‘키스나 애무를 허용하는 것은 성관계까지 허용한다는 뜻이다’(31.9%) 순이었다.
실태조사를 한 연구진은 응답자에게 성폭력 통념에 해당하는 10가지 문항을 제시한 뒤, 각 문항에 대한 생각을 ‘그렇다’(약간·매우 그렇다) ‘그렇지 않다’(별로·전혀 그렇지 않다) 중에서 고르도록 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3년 전 ‘2019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당시 동일 문항(15개 중 일부)과 비교하면, 성폭력과 관련한 통념이 더 악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폭력 원인이 노출이 심한 옷 때문’이라는 인식은 6.2%포인트, ‘술에 취한 상태에서 당한 성폭력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은 4.9%포인트 감소했으나, 그 외 대부분의 문항에서 ‘그렇다’ 응답률이 증가세를 보였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특히 20∼30대 남성 응답자 사이에서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한다는 인식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은 경찰에 바로 신고할 것이라는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런 잘못된 통념은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유발한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피해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말해봐야 네게 도움되지 않는다’(11.7%)였다. 그 다음은 ‘성폭력 피해는 수치스러운 일이다’(8.2%), ‘네가 그런 행동을 할 여지를 주었다’(7.8%), ‘친해서 한 행동(말)인데 네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6.8%) 순이었다.
이에 연구진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조사 결과는 전반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피해자다움,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의 책임을 돌리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며 “성별, 세대별로 나타난 성폭력 통념과 고정관념을 개선하기 위해 공익광고, 양성평등주간(매년 9월1일∼7일), 여성폭력방지주간(매년 11월25일∼12월1일) 등을 활용해 적극적인 (인식 개선)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올해 6번째를 맞은 이번 성폭력 실태조사는 지난해 8∼10월 전국 19살 이상 64살 이하 1만20명(여성 48.7%, 남성 51.3%)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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