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노동시장 개편안을 검토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가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호봉제 등 일한 기간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틀에서 벗어나 직무와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내용의 권고안(직무·성과급제)을 제안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을 개선하지 않고 직무·성과급제 도입만으로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15일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차별 해소를 거짓 명분으로 세우는 권고안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내어 연구회가 지난 12일 내놓은 권고안을 ‘노동 개악안’이라고 비판했다. 이 연대회의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여성노동조합·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 등이 참여했다.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종·직무·승진·근속·노동형태 등에서 차별받는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현실 개선 없이 직무급 도입만으로 성별임금격차는 해소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서비스·돌봄·사무직이 저평가되는 사회에서 이는 또 다른 차별을 낳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구회는 앞서 “2021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대비 여성 임금은 69.6%에 불과하다”며 “남성‧여성의 구별 없이 모든 국민이 상생하는 노동시장 구축을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하는 인사·임금 관리체계는 혁신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의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여성노동연대회의는 “(노동시장 내 성차별이 존재하는 현재)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직무급제를 도입한다면, 기존의 성차별 기준이 직무평가 과정에 반영될 우려가 크다”며 “여성집중직종의 직무를 저평가하면서 오히려 노동시장 내 성차별이 굳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회가 권고안에 1주 최대 노동시간을 80.5시간까지 확대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것을 두고서도 연대회의는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며 ‘노동시간 개악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장시간 업무에 언제든지 호출될 수 있는 노동자는 돌볼 사람이 없는, 혹은 타인의 돌봄을 받는 남성”이라며 “사업주가 초과근무를 요구할수록 돌봄 노동자로 호명되어 온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고 단시간, 비정규직, 질이 낮은 일자리로 밀려난다”고 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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