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타 바티아 유엔여성기구 부총재. 유엔여성기구 제공
“여성과 여아는 가정과 직장, 정치 영역 등에서 차별받고 있습니다. 성평등을 증진하고 이행하며 점검하는 법적 기반이 삶의 영역 전반에 필요합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의 아니타 바티아(Anita Bhatia) 부총재가 젠더 기반 폭력과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평등을 둘러싼 오해들”이라며 한 말이다. 이런 ‘오해’들을 없애고자 유엔여성기구 산하 성평등센터가 지난 8월 한국에서 첫발을 내딛었다. 바티아 부총재는 여성 대상 폭력의 해결을 위해선 성차별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법·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티아 부총재는 14일 <한겨레>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전세계적으로) 7억3600만명에 달하는 여성이 살면서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최소 한 번 겪은 것으로 추산된다. 데이터 취합의 한계를 감안하면 그 수치는 더욱 높을 것”이라며 “여성과 여아에 대한 폭력은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성평등 증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도전과제 중 하나”라고 했다.
유엔여성기구는 성평등과 여성 권한 강화를 목표로 2011년 1월 출범한 국제기구다. 바티아 부총재는 성차별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짚었다. 그는 “차별적인 사회 규범때문에 구조적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 고용, 교육 등에 대한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고 있고, 여성과 여아가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며 “이런 폭력은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 차별의 결과”라고 했다.
앞서 유엔은 2015년 9월 성평등을 주요 의제로 포함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하며 오는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성평등 목표의 달성은 요원하다. 바티아 부총재는 “세계적으로 우리가 2030년 성평등 실현을 위한 궤도에 올라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이미 세상은 성평등하다’는 일부의 믿음과 달리 여전히 많은 여성이 건강권·생존권을 보장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바티아 부총재는 “오늘날 가임기(15∼49살) 여성 중 무려 12억명 이상이 안전한 임신중지시술이 제한된 국가에 살고 있다. 빈곤과 기아 등 다른 부문에서도 여성과 여아는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느린 점을 우려했다. 바티아 부총재는 “법률 개혁의 속도가 너무 더디다. 지금과 같은 변화 속도라면, (전세계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적 기반의
성평등을 이루기까지는 286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여성기구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현재 3개의 전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젠더 통계 생산 및 분석·활용을 지원하기 위한 ‘글로벌 젠더 통계 센터’(멕시코), 성인지 예산 분야 전문성 개발 등을 위한 ‘성인지 예산센터’(모로코), 최근 한국에 세운 ‘성평등센터’가 그 3곳이다. 성평등센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최초로 설립한 유엔여성기구 산하 전문기관으로, 지난 8월5일 문을 연 뒤 지난 12일에 운영 100일을 맞았다. 유엔여성기구는 이 성평등센터를 디딤돌 삼아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센터를 카자흐스탄에 추가로 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바티아 부총재는 “아시아·태평양은 전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국들을 보유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전세계 극빈 인구의 3분의 2가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 여성 실업률은 남성보다 높고,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은 남성에 비해 평균 4배가 많은 무보수 돌봄노동 부담을 졌다”며 “한국의 성평등센터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의 성평등 증진을 위해 유엔여성기구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청년, 언론, 기업 간 파트너십(동반 관계)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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