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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 발신표시 없는 전화 그리고 침묵…스토킹 범죄인 이유

등록 2022-11-11 05:00수정 2022-11-11 08:56

재판부 “스토킹 처벌법, ‘음향’ 종류나 음량에 제한 없어”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아무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아무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아무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목소리’를 전달하지 않아도 피해자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겨레>가 10일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으로 확인한 판결문을 보면,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2단독 김은솔 판사는 스토킹 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ㄱ(32)씨에게 지난 6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하고, 치료강의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ㄱ씨는 지난해 12월 초 늦은 밤 휴대전화 발신자 표시 제한 기능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모두 11회 전화해 피해자에게 공포심과 불안감을 일으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수차례 전화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괴롭혔다.

스토킹 처벌법은 전화나 우편,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글이나 말, 영상, 음향 등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스토킹 유형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ㄱ씨는 법정에서 자신이 전화를 걸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음향’을 도달하게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ㄱ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스토킹 처벌법에 규정된 ‘음향’은 전화나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도달하는 모든 소리와 울림을 의미한다”며 “그 종류나 음량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이어 “전화 통화가 연결된 경우 발신인 휴대전화를 통해 수집되는 소리가 수신인 휴대전화에 도달하게 되므로 발신인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음향’이 수신인에게 전달되는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음향’을 도달하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음향’을 놓고 다른 해석을 내놓은 법원 판단이 여럿이다. 올해 들어 인천지법(10월)과 서울남부지법(6월), 제주지법(7월, 9월) 등에서 스토킹 처벌법이 규정한 ‘음향’을 좁게 보고 스토킹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나왔다. 이들 재판부는 ‘전화기 벨소리’는 전화나 정보통신망으로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이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수신을 차단했다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27일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는 헤어진 연인에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면 스토킹으로 볼 수 없다며 ㄴ씨(54)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전화기에 울리는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다”는 2005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음향’을 가해자의 ‘목소리’로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피해자가 받은 전화 속 ‘울림’이나 전화 온 사실을 전달하는 진동, 벨소리 모두 스토킹 행위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음향’에 제한을 두는 해석은 스토킹 처벌법 입법 취지, 그리고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로 겪었을 정신적 충격과 고통 등 피해자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기계적인 해석이고 설득력도 떨어진다”며 “스토킹 처벌법에서 피해자에게 도달한 ‘음향’에 어떤 제한도 두고 있지 않은 점이 적극 고려돼야 하고, 재판부가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 맥락을 더욱 세심히 들여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이어 “최근 일부 법원에서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스토킹 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할 때 인용하는 대법원 판례, 즉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향이 아니라는 17년 전 판례도 지금의 정보통신망 체계를 고려하여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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