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3월9일 서울 중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설치된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업무 준비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정부가 지난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힌 공무원을 징계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 놓고 정작 현황을 따로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직 사회가 성희롱·성폭력 2차 피해에 둔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혁신처는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와 신고자 등에게 2차 피해를 입힌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 징계 현황 자료를 제출해달라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별도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여성폭력방지법)은 ‘2차 피해’를 여성 대상 폭력 피해자에 대한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인사상 불이익 조치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앞서 여성가족부는 2020년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자 그해 11월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해 공무원의 2차 가해를 징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공무원 징계 관련 규정이 바뀌었다. 공무원징계령 시행규칙과 지방공무원 징계규칙을 변경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및 신고자 등에게 2차 피해를 입힌 공무원에게 견책부터 최대 파면에 이르는 징계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인사처는 지금까지 몇 명의 공무원이 2차 가해로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따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인사처는 공무원 징계 현황을 복무규정 위반, 품위 손상, 직권남용, 직무유기 및 태만, 금품수수, 기타 등 크게 10가지 유형으로 분류해서 통계 관리를 하고 있다. 2차 피해 유발은 ‘기타’ 항목에 포함된다.
현재 통계 집계로는 2차 가해 공무원 징계 현황을 따로 파악하기 어렵다. 기타 항목은 2차 가해와 함께 부정 청탁, 성과상여금 부정 수급, 직무상 비밀 이용 등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인사처가 성폭력 범죄와 성희롱을 저지르고 성매수를 한 공무원의 징계 현황은 별도 통계로 관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성폭력방지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공무원 사회의 2차 가해 규모 등 실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19년 상담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상담사례 249건 가운데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경험한 사례가 34.9%(87건)였다. 3건 가운데 1건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만큼 빈번하게 일어난다.
용혜인 의원은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대다수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동반하고 있어 피해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며 “성희롱·성폭력뿐만 아니라 2차 가해도 제대로 징계해야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온전하게 이뤄질 수 있다. 공공부문의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2차 가해 현황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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