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에서 아내인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50대 남성 가정폭력 가해자(앞줄 가운데)가 지난 6일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가정폭력 가해자의 ‘임시조치’ 위반 건수가 해마다 늘어 최근 5년 동안 6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조치는 법원이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를 격리·접근금지 하는 제도다. 접근금지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는데도 피해자 안전이 위협받으면서 가해자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경찰청 자료를 보면, 가정폭력 가해자의 임시조치 위반 건수는 2017년 340건에서 2019년 404건, 2021년 531건으로 늘었다. 올해 1∼9월 위반 건수는 지난해 전체기간보다 2.1% 증가한 542건으로 집계됐다. 5년새 59.4%가 늘어난 것이다. 법원은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피해자 주거로부터의 퇴거 △피해자 주거·직장 등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 △피해자에게 연락 금지 등의 임시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임시조치 위반에 따른 처벌은 애초 5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월21일부터 징역 1년 이하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로 처벌 조항이 강화됐다. 가정폭력처벌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처벌이 강화됐지만 가해자의 위법 행위는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 충남 서산에서는 가정폭력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피해자 직장에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피해자를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이 가정폭력 범죄 재발 우려가 크다고 판단할 때 직권으로 또는 피해자 신청으로 할 수 있는 ‘긴급임시조치’도 2017년 1183건에서 2019년 3447건, 2021년 3865건으로 4년새 226.7%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9월 집계된 건수만 해도 3659건이다.
2021년에 일어난 가정폭력 범죄를 유형별로 보면, 신체적 폭력에 해당하는 유형이 77.4%에 달한다. 폭행(존속폭행 포함)이 57.9%로 가장 많았고, 상해가 19.5%로 뒤를 이었다. 또한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의 반복적·상습적인 가정폭력에 두려움을 느껴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거나 고소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비중이 높았다. 가정폭력 범죄 가운데 폭행을 비롯해 협박(존속협박 포함), 모욕, 명예훼손 등 반의사불벌죄·친고죄로 분류된 범죄 비율이 61.2%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임시조치가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가정폭력을 막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가해자 동선을 추적·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이 올해 1월 낸 ‘가정폭력 접근금지명령 이행 강화 방안: 가해자 지피에스(GPS) 추적제도 도입을 위한 시론’ 보고서를 보면, 미국과 스페인, 프랑스는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 감시제도를 도입했다. 영국과 호주는 시범 운영 중이다. 지난 20대 국회 때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대상에 가정폭력 범죄를 추가하는 내용의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임호선 의원은 “지금의 소극적인 접근금지 조치로는 피해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가해자 추적·감시 제도를 도입하고, 현행 제도에서 경찰이 임시조치 유형 중 가해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신청하고 검사가 법원에 적극 청구해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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