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등 해외 에스엔에스(SNS)를 이용한 디지털 성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경찰이 해외 정보기술(IT) 회사에 범죄 관련 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일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경찰이 디지털 성범죄 수사를 위해 국외 정보기술(IT) 기업에 범죄자 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각 기업의 자발적인 협조로는 한계가 있어, 정보 제공을 명령할 수 있는 국제협약 가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해외 아이티 기업 대상 국제공조 신청 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경찰이 국외 기업에 범죄 관련 가입자 정보 제공을 요청한 건수는 2만6697건이었다. 2020년 7560건에서 지난해 1만2771건으로 68.9% 증가했다. 올해 1∼8월 신청 건수는 6366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이 요청하는 정보는 범죄 관련 가입자의 이름과 이메일, 전화번호, 가입 시 인터넷 주소(IP) 등이다.
경찰이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국외 기업에 국제공조를 신청한 범죄 유형 가운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불법촬영물 제작·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10.5%(2822건)다. ‘사이버 사기’(78.6%)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다.
국제공조 신청 10건 가운데 1건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국제공조를 신청한 건수는 2020년 767건에서 지난해 1166건으로 52% 증가했다. 올해 1∼8월 신청 건수는 2020년에 견줘 15.9% 증가한 889건이다.
경찰의 정보 제공 요청은 주로 기업에 직접 전자우편을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해당 회사에 정보 제공을 요청하면 회신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2020년께부터 기업에 직접 연락해서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외 기업에 국제공조를 신청하면 회신이 오는 비율은 76.1%였다. 2020~2021년 경찰이 국외 기업에 신청한 국제공조 건수는 2만331건이었고, 회신 건수는 1만5466건이었다.
구글과 메타(옛 페이스북)는 경찰이 국제공조를 신청할 수 있는 별도 페이지를 마련했고, 일부 기업은 경찰과의 직통 회선(핫라인)을 구축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기업 고객센터를 통해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별로 회신율도 편차가 있다. 텔레그램과 위커, 디스코드, 위챗 등 불법영상물 제작·유포의 온상으로 지목된 메신저 운영 기업들은 범죄 관련 가입자 정보 제공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자 검거를 위한 경찰의 국제공조 신청은 늘었지만, 사후 기록은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현재 국제공조 신청 통계를 관리할 때 기업별 신청 건수를 구분하지 않고, 회신받은 정보로 피의자를 얼마나 검거했는지도 따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익히 알려진 메신저와 달리 새로 생겼다가 없어지는 플랫폼도 많다. 사건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협조 의뢰를 받을 때 처음 보는 플랫폼도 많다”며 “기업별로 통계를 관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계 있어야 협력 체계도 제대로 구축될 것”
그러나 용혜인 의원은 “기업별 국제공조 회신율과 그에 따른 범인 검거율 등을 분석할 수 있는 통계가 존재해야 국제공조 협력 체계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서는 ‘부다페스트 협약’에 가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다페스트 협약’이라 불리는 유럽 사이버범죄 방지 협약은 유럽평의회가 2001년 제정한 협약이다. 가입국이 사법공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외국 기업에 정보제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전세계 66개 나라가 가입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협약에 가입하면 국외에 있는 디지털 증거를 보다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게 돼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용혜인 의원은 “협약에 가입해 피해 영상물이 유포 또는 저장된 국외 플랫폼 운영자에게 해당 불법영상물을 보전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신속한 가입의향서 제출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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