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고용률은 엠(M)자형이다. 20대에 고점을 찍은 뒤 결혼·출산·육아를 시작하는 30대에 뚝 떨어지다 40대 들어서야 반등한다. 고용률이 다시 고점을 찍는 연령은 40대 후반, 50대 초반이다.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야 일터로 돌아오는 여성들이 많은 탓이다. 실제 45~49살, 50∼54살 여성 고용률은 각각 66.0%, 65.5%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20대 고용률(68.7%) 뒤를 잇고 있다.(2020년 기준·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경력단절을 겪은 40대 후반, 50대 초반 여성은 렌털·급식 같은 서비스업으로 유입된다. 특히 렌털 업계는 공유 경제의 확산, 소비 패턴의 변화로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케이티(KT)경제경영연구소는 2020년 렌털 시장 규모를 10조7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 산업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중장년 여성들이다.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로, 기업이 고객에 대여한 각종 가전을 보수·점검하는 업무를 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노동연구원)은 이들의 80∼90%가 50대 전후 여성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렌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성별 임금격차·직종분리 같은 각종 성차별로부터 안전할까. 노동연구원은 하이케어솔루션에서 방문 서비스 업무를 하는 50대 여성노동자 4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FGI)를 진행해 그 결과를 ‘금속노조 여성노동자의 작업장 연구’ 보고서로 발표했다. 하이케어솔루션은 렌털 가전의 관리서비스를 하는 엘지(LG)전자의 자회사다. ‘매니저’로 불리는 이들 중년 여성 노동자들은 고객의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제가 신입일 때였는데 고객님 댁에 갔더니 젊은 20대 남자가 온몸에 문신이 있는 애가 그 딱 달라붙는 팬티 있잖아요, 여름에. 그거만 입고 있는 거야. 진짜 안 무섭겠어요?… 특히 남자가 있는 집에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부담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ㄱ씨)
“저희는 고객한테 메시지를 보내잖아요. (제)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으니까 고객이 풍경 사진도 보내고 야한 얘기도 살짝살짝 하고. 또 방문을 했는데 냉장고 점검을 하고 딱 뒤돌아서는데 가슴을 스친 거예요. 남자가. ‘이거 뭐하시는 거예요’ 이랬는데 그냥 ‘히히’거리면서 실수라고 하더라고요. 회사에다 얘기했는데, 처리 안 됐죠.”(ㄴ씨)
고객의 ‘집’에서 주로 일을 하기에 성폭력에 노출되기 쉬운데도 회사 차원의 조치는 업무 관련 앱의 ‘긴급 호출 버튼’ 제공 외에는 별다른 게 없다고 연구원은 지적한다. 버튼을 눌러도 회사에서 전화만 올 뿐이라고 인터뷰 참가자들은 증언했다. 2인 1조 방문, 고객 교체, 계약 해지 등의 후속 조치는 드물다.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문제 제기도 어려운 실상이다.
암묵적인 성별 임금 격차, 성별 직종 분리도 존재한다. 같은 방문 서비스업이라도 기계 설치·수리는 대체로 직고용된 남성이, 점검은 특수고용직인 여성이 한다. 수당도 다르다. 보고서는 정수기 직수관 교체처럼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남성 기사는 4만원을 받고, 여성노동자는 1만원을 받는 현실을 지적했다. 한 인터뷰 참여자는 과거 이 회사 정수기 곰팡이 수습 당시의 일을 전했다. 그는 이때 대규모 부품 교체를 진행했는데, 회사는 1시간 넘는 업무를 맡기며 3000원의 수당을 책정해 여성 점검원 다수가 업무를 거부하는 사태가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이 수당은 매니저들의 집단적인 문제 제기 뒤 1만원으로 인상됐고, 이후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서울지부 ‘엘지케어솔루션지회’를 설립했다.
보고서는 “기업의 성분리·차별적 관리와 통제, 고객의 권력남용에서 오는 갑질 행태, 성역할 고정관념, 남성중심성 등은 서비스 직군 여성노동자를 작업장에서 여전히 위태롭고 불평등한 상태로 고착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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