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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눈앞 자살위협, 기습 차량탑승에도…그 스토커는 왜 벌받지 않았나

등록 2022-04-28 17:59수정 2022-04-28 18:51

스토킹 처벌법 시행 6개월 판결문 22건 분석
합의서 낸 11건 중 9건, 스토킹 ‘공소 기각’
피해자 95% 여성, 아내·애인 등 친밀한 관계 54%
잠정·긴급임시조치에도 범죄 저지른 가해자 2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9월 ㄱ씨는 사실혼 관계였던 여성 ㄴ씨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 ㄴ씨 차량 조수석에 강제로 탑승했다. “안 만나주면 너 보는 앞에서 죽겠다”며 그 자리에서 수면제 200여 알을 먹어 자살을 시도했다. ㄱ씨는 그뒤에도 ㄴ씨가 연락을 받지 않자 “바람나서 (집을) 나갔다. 돈을 가지고 날랐다”는 비방글을 메신저 프로필에 썼다. 경찰은 “형사 처벌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스토킹을 멈주치 않았다. 급기야 ㄴ씨가 이사한 집까지 찾아가 대문 앞을 서성였다. ㄱ씨는 스토킹 처벌법, 명예훼손, 협박죄 혐의로 기소됐으나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법원이 피해자가 제출한 처벌불원서를 이유로 공소를 기각했기 때문이다.

스토킹 가해자 40.9%가 피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해 스토킹 범죄에 대한 공소 기각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킹 범죄는 재범, 보복 등의 우려가 큰 탓에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처벌 불원’ 뜻을 밝히곤 한다. 그런데도 스토킹 처벌법은 ‘반의사 불벌죄’여서 피해자의 ‘표면적인 합의 의사’만 있으면 처벌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이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6개월, ‘반의사 불벌죄’ 조항 삭제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28일 <한겨레>가 스토킹 시행일인 지난해 10월21일부터 지난 4월21일까지 6개월 동안 나온 22건의 스토킹 처벌법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명(59%)가 법원에 합의서를 제출했다. 스토킹 처벌법은 ‘반의사 불벌죄’로,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합의서가 제출된 11건 가운데 9건은 스토킹 처벌법 위반 부분의 공소가 기각됐다. 공소 기각이란 법원이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결정이다. 이 경우 피고인의 전과기록은 남지 않고, 수사기록은 5년 뒤 폐기된다. 나머지 두 건은 합의서 제출에도 재판부가 스토킹 관련 공소를 기각하지 않고 벌금형(1건), 집행유예(1건)를 선고했다.

“반의사 불벌죄, 처벌 효과는 놓치고 피해자 압박만 가중”

스토킹 처벌법 시행 전부터 반의사 불벌죄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여성·시민단체의 요구가 거셌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끊임없이 합의를 종용받는 이른바 ‘합의 스토킹’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당해서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지못해 합의서를 써주면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워진다. 스토킹 처벌법은 그간 연인 간 “사랑싸움”으로 사소하게 여긴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보고 처벌하고자 만들어졌는데 그 취지에 역행하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반의사 불벌죄 조항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 효과는 놓치고, 피해자는 (합의) 압박만 가중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실제 현실에서 이런 폐해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2건 가운데 21건(95%)의 피해자가 여성이었다. 12건(54%)은 가해자의 헤어진 아내나 연인을 대상으로, 결별 통보 이후에 발생했다. 5건(22%)은 옷가게, 노래방, 체육시설 등 판매·서비스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스토킹 범행이었다. 이미 한 차례 긴급응급조치나 잠정조치를 받고서도 범행을 지속한 가해자가 6명(27%)이었다. 스토킹 범죄 단독 사건은 8건(36%)이었고, 나머지 사건의 피고인은 주거침입·모욕·협박 등과 함께 기소됐다.

법원이 양형 이유로 자주 거론한 단어는 “반성”과 “다짐”이었다. “피고인이 구금된 동안 반성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거나,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하고 스토킹을 했는데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 사례가 있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직 스토킹 범죄에 대한 별도의 양형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교제 사실’ 들어 정상 참작하기도

일부 재판부는 스토킹 범죄를 여전히 ‘사랑싸움’으로 인식하는 정황도 엿보였다. 서울남부지법은 헤어진 연인에게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134차례 전화하고, 3차례 미행한 혐의로 기소된 ㄷ씨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고인이 피해자와 8개월 전부터 만나 교제를 해 온 사이였던 점”을 양형 참작 사유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수원지법은 헤어진 연인에게 88차례 전화하고, 집 앞에 찾아가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린 후 라이터를 든 상태로 문을 열라고 협박한 ㄹ씨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해자 역시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알코올 문제를 겪고 있고, 경찰 신고 이후에도 피고인과 연락을 유지하면서 집에 들이기도 하는 등 피고인이 잠정조치 위반 행위를 초래한 데 일부 책임이 있다”고 했다.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의 행실, 병력에서 찾기도 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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