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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성적 괴롭힘 징계 가볍게 받은 가해자, 결국 복수하거든요”

등록 2022-04-24 15:22수정 2022-04-24 16:24

사무금융노조·신경아 한림대 교수
금융업 종사자 2466명 대상 실태조사

9.2%, 지난 1년간 성적 괴롭힘 겪어
그 가운데 44.3% “피해 알리지 않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여자는 정규직이 아니었고, 가해자는 책임자였는데 회식 후에 노래방에 끌고 가 엉덩이를 주무른 거죠. 근데 감사실에 그걸 신고하자 나이 많은 남성 관리자들이 피해자를 압박해서 없던 일로 만들었어요. 그 결과 피해자는 나갔고, 가해자는 유급 업무정지를 짧게 받았죠.”(금융계 여성 노동자 ㄱ씨)
지난 1년 동안 보험·카드사 등 금융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열에 한 명 꼴로 직장에서 성적 괴롭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둘 중 하나는 피해를 알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사무금융노조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사무금융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성적 괴롭힙 실태조사 보고서’에 담겼다.

연구팀은 보험·카드·저축은행·금융공기업 등 금융업 종사자 2466명(여성 1120명, 남성 1346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17일부터 31일까지 성적 괴롭힘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 전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 가운데 지난 1년간 성적 괴롭힘을 겪었다고 답한 비율이 9.2%(226명)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상대적으로 대면 근무가 줄었는데도 열에 한 명 꼴로 성적 괴롭힘을 겪은 셈이다.

 ‘분란 일으킨 사람 될까’ 신고도 못했다

성적 괴롭힘 유형 중에서는 △업무와 무관한 애교나 친절을 요구했다(82명) △음담패설이나 성적 농담을 했다(71명)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했다(61명) 등의 피해 빈도가 높았다. 성별을 분리해보면, 여성은 △업무와 무관한 애교·친절 요구 △회식자리 옆자리 강요가 많았고, 남성은 △성적인 농담 △외모와 옷이 성별 고정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롱이 많았다. 성적 괴롭힘의 가해자는 상사(여성 91.6%, 남성 88.5%)가, 장소는 오프라인(93.8%)이 절대다수였다. 피해자 성별을 가리지 않고, 가해자는 남성인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가 여성, 남성일 때 ‘남성 상사’가 가해자인 경우는 각각 78.7%, 80.3% 였다.

성적 괴롭힘 피해의 대처 방식을 묻자 응답자의 44.3%(226명)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주변 동료에게 알렸다(41.2%) △가해자에게 직접 문제제기했다(6.2%)가 뒤를 이었다. 반면 △상사나 부서장 등에게 상담했다(5.8%) △노동조합에 알렸다(1.3%) △직장 내 고충처리 절차를 이용했다(2.2%)는 답변 비율은 낮았다. 공식 절차를 거쳐 사건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참고 넘어가거나 동료에게 상담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연구팀은 직장 내 성적 괴롭힘 피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응답자(‘스스로 휴직·휴가를 갔다’, ‘스스로 부서 이동했다’ 포함) 118명에게 이렇게 행동한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분란 일으킨 사람으로 여겨질까 봐(38.7%) △문제를 제기할 만큼 심각하지 않고 흔한 일이어서(23.5%) △공정하게 처리되거나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서(19.3%) 등을 피해를 알리지 않은 주된 이유로 꼽았다. 특히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을 것 같아서를 꼽은 비율은 여성(21.8%)이 남성(14.6%)보다 높았다. 연구팀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공식적인 기구를 설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위원회가 주로 사측·관리직 남성이 채우고 있어서 여성은 사건처리가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가벼운 징계를 받은 사람은 결국 복수를 하거든요”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렸다는 응답자 22명에게는 회사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물었다.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응답이 77.3%(17명)였다. 성별로 분리하면, 여성 피해자는 84.6%, 남성은 66.7%였다. 여성에 대한 직장 내 성적 괴롭힘 피해를 회사가 더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설문조사에 이어 직장 내 괴롭힘(성적 괴롭힘 포함)을 겪은 19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FGI)를 진행했다. 여성 조사 참여자들은 성적 괴롭힘을 겪어도 공식 절차를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직장 내 성희롱 담당자가) 남자 직원이라 편하게 말을 못해요… 제 경험담을 들었을 때 다들 힘들었겠다고만 얘기하지 어디 가서 말하자고 그러지 않아요. 다들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도 모르고요.(금융업 종사자 ㄴ씨)

#신고를 할 수 없는 구조에요. 신고를 해도 인사위원회에서 가벼운 징계를 내리고 가벼운 징계를 받은 사람은 결국 복수를 하거든요. 본인의 권력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그러면 피해자가 어떻게 회사를 다닐 수 있겠어요. (금융업 종사자 ㄷ씨)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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