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배상명령’ 대상범죄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유포죄 같은 최신 디지털 성범죄가 빠져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21일 권고했다. 배상명령은 형사 재판에서 피해자가 신청을 하면 법원이 유죄 판결을 선고하면서 범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제도다. 따로 민사 소송을 진행하지 않아도 돼 소송비용이 추가로 들지 않고, 상대적으로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위는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대상범죄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유포 범죄, 불법 ‘합성물’(딥페이크) 제작·유포 범죄,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강요하는 범죄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대상범죄 목록에 강도·절도·폭력·사기·횡령과 7개 성폭력 범죄(업무상 위력 강제추행, 통신매체이용음란,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 등)만이 포함되어 있다. 엔(n)번방 사태를 거치면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유포, 불법 ‘합성물’ 제작·유포 범죄 등이 신설됐으나, 배상명령 운영을 규정한 소송촉진법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대상범죄에 없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하면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으나 성범죄 재판에서 이런 합의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문위는 설명했다.
배상명령 전체 인용금액 가운데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낮았다. 최근 5년(2016∼2020)간 연평균 656억8849만원이 배상명령을 통해 피해자에게 돌아갔다. 이 가운데 성범죄 관련 인용금액은 전체의 0.49%, 3억2057만원에 불과했다. 사기·횡령 같은 경제범죄 배상명령 인용금액이 전체의 90%를 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배상명령 인용 건수는 2016년 2278건에서 2020년 9116건으로 302% 증가했지만, 성범죄 인용 건수는 13건에서 15건으로 5년간 15.3% 느는 데 그쳤다. (법원행정처, 2021 사법연감)
전문위는 성범죄 피해자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신청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무엇보다 배상명령 집행 시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숨겨 처리할 수 있게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위는 피해자들이 인적사항 노출로 재범이나 2차 피해를 당할까 봐 배상명령 이용을 꺼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신 디지털 성범죄의 등장과 성범죄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 탓에 피해자들은 금전적인 피해 배상을 받기 더 어려운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꽃뱀’이라 여겨질까 봐 성범죄 피해자는 극심한 피해를 입고도 합의금을 받는데 주저한다. 합의하며 쓴 처벌불원서가 법원에 제출되면 가해자에게 ‘감경 요소’로 작용할까 봐 합의를 거부하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나이가 적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비용에 부담을 느껴 민사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전문위는 “배상명령을 활성화하기 위해 위자료 산정 기준을 상향 현실화하고, 직접 접촉 없이 이뤄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피해 영상물 유포·확산 방지를 위한 피해자의 자구적 활동과 관련된 비용을 경제적 손해에 포함하는 등 인정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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