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받은 젠더 이슈 질문에 이른바 ‘유체이탈’식 답변으로 일관해 새삼 눈길을 끈다. 윤 당선자는 당선 전 이 외신에 ‘페미니스트’라고 서면 답변했다가, 당을 통해 최종 데스킹된 답변이 반영되었다며 부인한 바 있다.
윤 당선자는 지난 14일 미국 언론 <워싱턴 포스트>에 “대선 기간 부상했던 젠더 이슈는 본질과 거리가 먼 ‘정치적인 프레임’ (politically framed)이었다”고 말했다. 대선 기간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 일곱 글자 공약을 게재하며 일부 남초 커뮤니티가 집중적으로 제기한 젠더 이슈를 정치 의제화한 이가 윤 당선자였다는 세간의 평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답변이다. 윤 당선자는 또 “지금은 남성 장관이 다수이지만, 머지않아 여성이 남성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현 정부의 여성 장관 할당 방침을 폐기하고, 실제 18개 부처 가운데 3명의 여성(16.75%)만 장관 후보로 지명한 뒤의 발언이었다. 향후 5년의 정부 임명권자가 여성 장관을 중용할 의지를 표명한 것인지 종잡기 어렵다.
국제 기준 따르겠다지만, 여성 장관은 18명 중 3명
18일 <워싱턴 포스트>의 해당 인터뷰 전문을 다시 살펴보면, 이런 답변이 나오기까지 윤 당선자가 들은 질문은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 여성의 정치·경제 참여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최저(lowest)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격차를 메우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였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거나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윤 당선자의 인식과 상반된 전제로, 당선자는 실제 “기성세대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부족하나, 기회균등에 대한 공동체의 헌신 덕분에 여성의 고위직 참여는 매우 빠르게(very fast) 늘고 있다. 지금은 장관들 가운데 남성이 대다수이나, 가까운 미래에 여성들이 그들의 자리를 차지(take over)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윤 당선자는 “나는 정치·사회적 행위와 젠더 이슈, 여성의 기회 보장 부분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코노미스트>가 7일(현지시각) 공개한 유리천장 지수. 사진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윤 당선자는 이어 “젠더 문제는 대선 기간에 의제가 됐다… 대선 기간에 부상한 젠더 이슈는 젠더 이슈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프레임’”이라면서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집단적 차별에 직면하지 않고 성장했다”고 했다. 그는 구조적 차별의 관점이 아니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사건별로)”로 접근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며 해당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무리 지었다.
윤 당선자는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빠르게 늘고 있고 △젊은 세대는 구조적 성차별을 겪지 않고 성장했다고 했지만, 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발언이다. 지난달 8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성별 임금 격차, 여성 이사회 임원 비율,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을 종합해 ‘유리천장지수’를 산출한 결과, 조사대상 29개국 가운데 한국이 29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2013년부터 10년째 최하위를 유지하고 있어 당선자 인식처럼 “매우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고위직 진출과 연관성이 높은 △여성 이사회 임원 비율 29위 △관리직 여성 비율 28위 △여성 의회 진출 비율은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정치적 프레임” 발언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제기되던 여가부 폐지, 무고죄 강화 등의 이슈는 국민의힘 경선을 거치며 주요 의제로 부상됐고, 이어 윤석열 후보자는 10대 공약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넣기도 했다. 이를 통해 온라인 백래시의 정치자원화와 여성 배제의 전면화가 강화되었으나, 성찰 대신 비판의 소재로 되레 삼는 모양새다.
이날 인터뷰는 윤 당선자가 대선 승리 후 처음 가진 외신 단독 인터뷰였다. 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인 지난달 7일 이 매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생각한다”는 표현을 썼다가 논란이 일자 국민의힘이 나서 해당 발언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도쿄·서울지국장이 직접 답변서 원문을 공개하면서 해당 문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최종 데스킹을 거치지 않은 답변이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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