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착취물 유포 협박에 일을 그만두거나, 사설업체에 많게는 수백만원을 내고 유포된 성착취물을 지운다. 그런데도 이런 피해는 “범죄로 인한 손해임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에서 제외되곤 한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전문위)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이유다.
전문위는 12일 발표한 9차 권고안에서 대검찰청 예규 ‘범죄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해 지원 ‘대상 범죄’에 디지털 성범죄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기존 지침은 “살인·강도·강간·폭행·방화 등 생명·신체의 안전을 해하는 범죄 피해자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고 되어 있다. 법무부는 ‘엔(n)번방’ 사태를 거치면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도 이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한다고 대외적으로 밝혀왔다. 그러나 지침은 바꾸지 않아 실제 지원은 원활하지 않았다. <한겨레>가 확인한 결과, 2019∼20년 법무부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 제공한 경제적 지원 총액은 3억6369만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지원금액 188억6354만원의 1.92%에 불과하다.
전문위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존 예규에 예외조항을 둘 것을 권고했다. 기존 예규는 △5주 이상 치료를 요하는 신체적 피해를 입어야 치료비를 지원하고 △범죄 발생 이후 10년 이내의 피해일 때만 경제적 지원을 하도록 되어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극심한 공포, 스트레스를 유발하나 이 증상이 바로 ‘신체적 피해’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다. 범죄가 발생하고 10년이 흐른 뒤에도 성착취물이 재유포되면 피해는 원점에서 반복된다. 기존 예규를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지원 신청은 ‘기준 미달’로 탈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전문위는 “미국 에이브이에이에이법(AVAA·The Amy, Vicky, and Andy Child pornography victim assistance Act of 2018)은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그 피해가 인생 전반에 걸쳐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전면 배상 등 실질적 배상제도를 마련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명확한 기준에 의해 지원받을 수 있도록 기존 예규에 예외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가 성착취물 유포·판매 등을 통해 얻은 범죄수익 환수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전문위는 짚었다. 디지털 성범죄는 ‘재산범죄’가 아니어서, 가해자의 범죄수익을 환수해도 이를 해당 범죄의 피해자에게 직접 돌려주지 못한다. 환수한 수익은 법무부 일반회계로 편입될 뿐이다. 전문위는 “디지털 성범죄 범죄수익금은 범죄행위와 피해 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환수한 범죄수익 중 일부를 별도 기금으로 조성해 피해자를 위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위는 현행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 법은 디지털 성범죄로 얻은 수익도 몰수 대상으로 정하고 있으나, 몰수가 ‘의무’는 아니다. 법 조항 자체가 ‘몰수할 수 있다’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전문위는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이익 취득을 원천 금지하고, 경제적 요인 제거를 통해 범죄 억지력을 강화하며,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수익에 대한 철저한 몰수·추징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