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여성가족부 제공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해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0일 첫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김현숙(56) 당선자 정책특보를 지명했다. 여가부 폐지안은 새 정부 출범 뒤로 유예된 상태로,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을 역임했던 경제학자에게 윤석열 정부의 첫 여가부 장관 및 여가부 조직 재편의 몫이 맡겨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이날 오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 기자회견에서 ‘1차 인선안’을 발표, 유일한 여성 후보자로 지명된 김현숙 후보자를 두고 “이번 선거 과정에서 영유아 보육 초등돌봄 등 사각지대 없는 수요맞춤형 육아지원정책 포함한 가족정책 설계 등 공약의 밑그림을 그려왔다”며 “공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인구대책과 가족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뤄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소개했다.
김 후보자는 지명 뒤 소감문을 통해 “여성가족부에 갖고 계신 관심과 염려를 잘 알기에 장관 후보자로서 커다란 책임감을 느낀다”며 “정책 일선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인구, 가족, 아동 문제를 챙기며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젠더갈등과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풀어나갈 수 있는 부처의 새로운 역할을 정립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기자들에겐 “부처가 언제 개편될지는 지금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 출신의 김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 등에서 공부한 뒤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임 중 19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했고, 박근혜 정부 때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윤석열 당선자의 당내 경선 캠프 때부터 정책 지원을 해온 뒤, 지난달 인수위에 합류해 여가부 폐지, 저출산·고령화 관련 정책 등을 담당해 왔다.
‘폐지’를 전제로 한 여가부 장관에 김 후보자를 내정한 것은 여가부가 저출생 등의 문제로 관통되는 인구·가족 정책에 주력하고 나아가 일부 기능이 타부처에 이관될 가능성을 좀 더 뚜렷이 제시한다.
김 후보자는 교수 시절 출산율, 보육 문제 등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지난해에는 ‘중앙과 지방정부 출산율 제고정책 효과성 분석’ 논문을 발표했고, 이전에는 ‘오이시디(OECD) 국가들의 출산율 결정요인: 가족친화정책과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에 대한 분석’(2019), ‘정부의 영유아 보육지원과 기혼여성 노동공급에 관한 패널분석’(2018) 등의 논문에 저자로 참여한 바 있다.
다만 19대 국회에서 여가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가부 권한 강화’와 연결되는 법안을 수차례 발의한 바 있다. 여가부 장관의 자료제출 요구권을 강화하는 성별영향분석평가법 개정안, 지역구 선거 여성 30% 공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여가부 장관이 정부위원회 성별 참여현황을 공표하고 개선 권고하도록 하는 여성발전기본법 개정안 등이 그가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성별영향평가란 정부 각 부처의 추진 정책이 ‘성평등’하게 운영되는지를 여가부가 평가하는 제도로 김 후보자는 당시 내실 있는 제도 운영을 위해 여가부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편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저성과해고·취업규칙 변경 양대지침 등을 발표하고 노동개편 관련 5대 법안을 추진할 당시 사회적 갈등이 크게 야기됐고, 김 후보자 역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재임하며 ‘무리한 업무 방식’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성계에서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한국여성학회장인 김현미 연세대 교수는 <한겨레>에 “인구·가족 정책에 방점을 찍겠다는 인사”라며 “과거 정부들에서 이미 실패한 저출산 인구 정책으로 여성을 대상화하지 말고 공적·사회적 영역에서의 여성 참여를 적극적으로 강화할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도 “여가부가 저출산이나 가족·보육 위주의 부처로 개편된다면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거나 역할의 성별화라는 구조적 문제는 개선할 수 없을 것”이라며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해소 등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성평등 부처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가부 폐지를 전제로 한 여성 장관 내정에 대해서도 시선은 곱지 않다. 김현미 교수는 “어떤 부처의 문을 닫는 역할, 즉 희생하는 역할을 여성에게 맡긴다는 것도 문제다. 김 후보자는 한국사회가 선진국형 성평등 모델로 나아가기 위해 여가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오히려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윤 당선자를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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