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과 시민 모임’이 17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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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과 시민 선언’에 이름을 올린 참여자 수다. 단 이틀 동안 받은 서명이다. ‘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과 시민 모임’(모임)은 17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 정책을 전담할 정부 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우리 모두를 위해 성평등 정책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성평등 정책의 퇴행을 우려한다”며 “성평등 정책 강화는 단지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더욱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국가의 경제발전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더욱 노력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모임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성평등 관련 인식 등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13일 대통령 당선자는 ‘여성가족부가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면서 “지금 우리는 성평등은 물론 민주주의와 다양성 존중 등 우리 사회가 힘겹게 이룩하고 지켜낸 가치들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음을 목격하고 있다. 차기 정부에는 왜곡된 인식에 근거해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을 외면할 뿐 성평등 정책을 이해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인이 없는 것은 아닌지 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여가부의 소명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여가부를 폐지해선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짚었다. “대한민국의 성평등 수준은 우리의 국력과 국격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성격차 지수가 156개국 중 102위(2021년 기준), 성별임금 격차 31.5%(2020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지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 “각 나라마다 정부기관을 두고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불과 20여년 만에 여가부 폐지를 운운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는 명백한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여성 혹은 성평등 전담 장관급 부서는 전 세계 97개국에서 설치·운영하고 있다.
‘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과 시민 모임’이 17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고은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는 참여정부 시절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여성부로는 세 번째)인 장하진 전 장관, 장필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장효은 대학생, 강시현 성평등교육 전문가, 함아연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활동가 등이 발언에 나섰다. 장 전 장관은 “성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여가부가 꼭 필요하다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면서 “실용성을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조차 임기 중 가족·청소년 업무를 여가부로 이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여가부의 업무를 분산하는 게 아니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힌 윤 당선자는 그분들의 철학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일반 시민 참가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미혼모 당사자인 함아연 활동가는 “한부모와 미혼모가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이 살아갈 성평등한 미래를 위해서다. 제 아들에게 제 성을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은 여가부의 가족정책 덕분이었고, 출산 뒤 경력단절된 제가 재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여가부의 노력 덕분이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성평등한 정책이 너무나도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장효은씨도 “성차별, 여성 혐오는 뉴스에 나오는 소수의 일이 아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학교에서, 일상에서, 구직 과정에서 겪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차별을 외면하지 말고 약자의 편에 서는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철회하라”, “성평등 정책, 예산 인력을 확대하라”, “성평등 실현이 대통령의 책무다”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모임을 처음 계획한 일원 중 한 명인 정현백 여가부 전 장관은 <한겨레>에 “처음엔 저를 비롯한 중년 페미니스트들이 문제 의식을 가지고 (단체가 아닌) 개인 단위로 목소리를 같이 낼 시민들을 모으게 됐다. 생각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연대의 목소리를 내줬다. 여성연구자, 여성단체 활동가뿐 아니라 2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남녀 시민들 8천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