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성소수자 유튜버 김철수씨. 사진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스물두 살, 여름이었다. 성소수자 유튜버 김철수는 아빠를 집 근처 호프집으로 불러냈다. 아들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아빠에게 말하고 싶었다. “100m 경주 출발선 앞에 선 것처럼” 숨이 가빠왔다. 편의점에서 팩 소주 두 개를 집어 들어, 10초 만에 한 개를 비웠다. 막상 아빠 얼굴을 보자 말 대신 토가 먼저 나왔다. 두 차례 속을 게우고 입을 열었다. “아빠 나 남자 좋아해.”
아빠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차분했다. “그러니까 텔레비에 홍석천 나오잖아. 걔가 남자 좋아하듯이 너도 그렇다는 거? …이이, 난 또 뭐라고. 아빠도 그랬어. 아빠 중학교 때 있잖아…”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아빠는 말했다. 그러나 김철수는 오히려 아빠가 말하는 ‘지나가는 감정’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겪은 사랑의 감정이 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
“너랑 나랑 다를 게 없다는 건 나만 알고 있잖아요. 그 사실을 너무 알리고 싶어서 책을 썼어요.”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철수(사진)씨는 책 <보통 남자 김철수>(브라이트)를 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구독자 19만5000명 보유한 유튜버다. 동성 연인(현재 이별했다)과 함께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공유해 두터운 팬층을 형성해왔다. “영상은 현재진행형이죠. 책으로는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둔 이야기를 좀 더 꺼내고 싶었어요. 입체적이고, 더 내밀한 제 모습을요.”
이야기는 성소수자 유튜버 김철수가 ‘청년 김슬기’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복무 중이었던 그는 일기를 쓰다가 ‘김철수’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이보다 더 친근하고 ‘아무것도 아닌’이름이 있을까. 사회가 규정지어 놓은 만만함의 대명사. …나는 그 이름을 이용하고 싶었다. 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게 달라붙는 더러움, 혐오스러움 따위를 처단하고 싶었다.”(책에서 발췌)
그러나 개명 신청서에 이런 사유를 적을 순 없었다. “개명 심사를 봐주는 판사가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라거나 법전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은 함정카드”일까 봐서다. 대신 이렇게 적어 넣었다. ‘(슬기라는 이름이) 여성스러워서 놀림 받아 괴로웠음.’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피하려고 다른 성별 고정관념을 이용한 셈이다. 그걸 알면서도 거짓 이유를 적었던 건 새 이름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명을) 오직 스스로가 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시작점으로 삼고 싶었다. 이전까지 허울뿐이라고 느꼈던 삶과 단절하고 싶었다.”
법원의 개명 허가와 함께 ‘진짜 나로 사는 삶’이 시작됐다. ‘내가 나임을 감추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유튜버를 직업으로 삼게 됐다. “유튜브는 게이인 것을 드러내도 되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어요. 커밍아웃해야 한다는 부담감 자체가 없었죠.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면 되니까요.”
그러나 굳은 결심만으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커밍아웃 뒤에도 여느 때처럼 아들 취업 걱정만 잔뜩 늘어놓았던 아빠처럼.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도, 나아가 커밍아웃을 해도 이 사회는 계속 그대로였다. 다른 사람처럼 결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혐오 밖으로 탈출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책에서 발췌)
모두가 볼 수 있는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게이 유튜버씩이나” 되는 사람이지만 일상에서 성지향성을 반사적으로 숨기는 순간은 수시로 찾아왔다. 함께 살던 애인이 아파 함께 병원에 갔을 때, 김철수는 의사에게 ‘같이 사는 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우리가 게이라는 걸 알고 해코지할지도 모르잖아.”(책에서 발췌)
다용도실에 빗물이 들이쳐 집안이 물바다가 됐을 때도 그가 걱정하는 건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살림살이가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사랑의 흔적들이다. 집주인이 보수공사를 하러 잠깐 집에 다녀가겠다고 통보하자 그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웃고 있는 사진, 서로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커플 인형을 재빨리 치웠다. 미처 못 치운, 냉장고 문에 무지개 자석으로 붙여둔 커플 사진을 홀로 발견하고 마음을 졸였다. 혹여 집주인이 세입자가 게이 커플인 걸 알고 집세를 올릴까 봐서다. 지나친 상상인 걸 알지만 멈출 수 없다. 그는 말한다. “아침마다 물 퍼내도 좋으니 액자 같은 건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도 너희들처럼 누군가가 우릴 지켜줬으면 좋겠어. …차별금지법이든, 동성결혼 법제화든, 학교 교육이든 우리는 존중받아야 하며 우리가 동등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려야 한다. 그건 우리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혐오(차별)받기 때문이다.”
그도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제가 유튜브 시작했을 때 성소수자 유튜버는 거의 제가 유일했어요. 그런데 6년이 지난 요즘엔 정말 많은 성소수자 유튜버가 생겼죠. 그만큼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일 거예요. 그렇다고 혐오라는 안개가 완전히 걷힌 건 아니에요. 지하철을 타다 누군가가 부러 크게 틀어둔 성경이 흘러나올 때, 명동 길거리를 거닐다 ‘동성 간 교합은 죄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봤을 때. 엄청나게 위협감을 느끼진 않지만, 미미한 두려움은 여전히 느껴요.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재확인 당하는’ 것만 같아요. 어떻게 그런 혐오 발언이 명동 거리에 나부끼죠? 누가 그걸 허가했을까요? 왜 아무도 막지 않는 걸까요?”
인터뷰 내내 그는 “첫 책이어서 많이 부족하다”고 얼굴을 붉혔지만, 책은 여느 에세이보다 묵직하다. ‘나로 살기’ 위해 더 높고 더 많은 허들을 넘었기에 그럴 것이다. “제 책이 성소수자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외감이라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읽고 안도감을 느낄 거에요. ”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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