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의제강간 사건 발생 건수가 전년보다 1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경찰 범죄통계를 보면, 2020년 미성년자 의제강간 발생 건수는 174건으로 전년 71건에 견줘 145% 늘었다. 최근 5년간 의제강간 발생 건수 사건 발생 추이에 비해서도 증가 폭이 두드러졌다. 의제강간 발생 건수는 △2016년 40건 △2017년 42건 △2018년 64건 △2019년 71건이었다.
의제강간 발생이 큰 폭으로 증가한 배경에는 2020년 5월19일 시행된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형법 305조2항 신설)이 자리하고 있다. 의제강간은 19살 이상 성인의 ‘성교 동의 연령’에 이르지 못한 아동·청소년과의 성관계를 동의했더라도 강간으로 보고 처벌하는 것이다. 개정 전에는 의제강간 적용 피해자 나이가 13살 미만이었으나, 엔(n)번방 사태 뒤 10대 성착취 문제가 널리 알려지며 16살 미만으로 상향됐다. 2020년 5~12월 사이 13~15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의제강간 발생 건수가 더해지면서 전년도 발생 건수의 2.5배에 가까운 범죄가 포착된 것이다.
젠더폭력 피해자 지원현장에서도 의제연령 상향으로 인한 변화가 감지된다. 지역의 한 해바라기센터 관계자는 “작년 연말에 상담 통계를 내다가 ‘성매매’ 지원 건수가 예년보다 줄어 의아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성매매’ 카테고리에 속하던 13∼15살 여성청소년 지원 실적이 ‘성폭력’(의제강간은 성폭력)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통계 착시’였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력이 취약한 13∼15살 여성청소년들은 ‘문상(문화상품권)’이나 ‘기프티콘’만으로도 성매매로 유인되고, 가해자에게 습관적으로 쓴 ‘넹’ ‘ㅋㅋㅋ’ 등의 문자만으로도 성착취의 강제성을 부정당하기도 한다”며 “의제강간 연령이 높아져 성매매의 외피를 두른 성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6년 아동 성매매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평균 나이는 14.7살이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으로 그동안 신고되지 않았던 성폭력이 포착됐을 개연성도 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1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는 대부분 온라인그루밍(온라인에서 피해자와 신뢰관계를 형성한 뒤 성적 착취를 하는 행위)을 동반해 이뤄지기에 성폭력과 성매매의 구분선이 특히나 더 모호하다”며 “과거에는 이런 모호함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피해를 볼까 신고하길 꺼렸다면, 이제는 보다 쉽게 피해자도 신고하고 지원단체도 신고를 권유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의제강간에 대한 처벌은 미약하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된다. 의제강간과 강간 형량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니, 강간을 하고서도 마치 의제강간인 것처럼 꾸미는 일이 생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0대 스키강사가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조건만남 30만원 수락했습니다”라고 말하게 한 후 이를 녹음한 일이 알려지기도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2021 양형기준’을 보면(의제강간 관련법 개정 반영 전)13세 미만을 상대로한 의제강간 기본 형량은 2년6개월~5년이지만 강간은 8~12년이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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