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국회 정의당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치 1번지’. 대권으로 가는 ‘엘리트 코스’. 선거구로서 ‘종로구’를 수식하는 말들은 ‘기득권’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10일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그곳에 출사표를 던졌다. 자신을 “장애여성이고,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면서.
그가 밟아온 궤적은 ‘기득권’과 동떨어져 있다. 세살 무렵 겪은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청년 시절부터 장애인 인권 운동을 했고, 특히 겹겹의 차별 속에 놓인 ‘장애여성’에 주목해 1998년부터 ‘장애여성공감’을 창립하고 이끌었다. 동시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내면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 등 수많은 피해자를 곁에서 도왔다. 2020년 2월 정의당에 입당했고, 이듬해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 해결을 맡았다.
배 부대표를 만난 18일은 김 전 대표 성추행 사건 조사를 시작한 날로부터 딱 1년째 되는 날이었다. 김지은씨가 ‘미투’를 폄훼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를 향해 “사과하라”고 재차 요구한 날이자,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나흘간의 침묵을 깨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이기도 했다. 들어야 할 말이 많았다.
국회 본관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한 인터뷰에서 배 부대표는 포부와 고민을 두루 털어놨다. “내 친구 ‘류장강(류호정·장혜영·강민진)’과 함께 남성을 경유하지 않는 젠더 정치를 하겠다”면서도 “정의당이 냈던 노동·복지 공약이 상대적으로 차별성이 약해 성평등에 관한 입장이 부각되는 건 아닌지 성찰할 지점이 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종로와의 인연은?
“결혼하고 종로구 혜화동에서 신혼살림을 꾸려 4년 살았다. 이후 (활동했던)‘장애여성공감’이 강동구에 있어 너무 멀어 이사했다 2020년 초 돌아왔다. 보궐선거를 예측했냐고? 정의당 입당 전인 2019년 말에 (집을) 계약했다. 큰 그림은 없었다.(웃음)”
“문턱 낮추는 일은 내가 잘할 수 있다”
―정의당이 ‘정치1번지’ 종로에 왜 배복주를 후보로 냈다고 보나.
“종로는 유력 정치인이 경유하는 ‘엘리트 코스’처럼 여기지만 동시에 사회 변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정의당은 불안정 노동자,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 종로를 기득권의 목소리가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에 맞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으로 만들라고 저를 추천한 게 아닐까. 여태 종로구에서 당선된 여성 국회의원은 박순천(1898∼1983·1950년 당선)이 유일하다. 여성이고, 장애가 있는 제가 당선된다면 한국 정치 역사에 울림을 주는 사건이 되리라 본다. 국회 안에 국민을 닮은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종로구 국회의원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종로구 인구는 14만∼15만으로 많은 편은 아니다. 문화재가 많고 관광지여서 ‘방문자’가 많다. 이런 특성에 맞춰 종로의 접근성을 키우려 한다. 장애가 있어도, 국적이 다양해도 찾을 수 있게 종로의 문턱을 낮출 것이다. 문턱 낮추는 일은 내가 잘할 수 있다.
또 종로에는 참여연대, 이주인권단체 등 다양한 시민단체가 밀집해 있다. 이런 목소리를 연결해 한 데 모을 수 있는 곳이 종로다. 나 역시 장애인·인권·반성폭력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쌓아온 만큼 적극적인 네트워킹이 가능하다. 종로를 기반 삼아 차별에 맞서고 인권 수준을 높이는 사회가 되도록 입법활동을 해나가겠다.”
―정치인 배복주의 ‘자원’은 무엇인가.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를 이끌며 장애·여성이라는 다중의 차별 속에 놓여있지만 세상에 잘 보이지 않던 장애여성의 존재를 드러냈다. 가장 자랑스럽고 신명 났고 중요했던 경험이다. 성차별이 젠더폭력으로 이어지는 맥락과 ‘피해자의 힘’도 알게 됐다. 피해자의 용기는 우리를 보다 성평등한 사회로 전진하게 했다. ‘당사자에게 답이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당사자는 이 문제를 가장 오래 고민한 사람이기에, 가장 정의로울 수 있다. 그러나 기성 정치인들은 당사자를 ‘대상화’하고 ‘이 정도 해줬으면 됐지?’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18일 오후 국회 정의당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불평등 강화의 득표 전략, 그러지 좀 맙시다!”
―백래시(사회변화에 대한 반발 움직임)의 광풍 속에서 출마해 ‘당선’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확실히 지난 대선과 다르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말했을 때 환호가 나오지 않았느냐. 이제는 ‘페미’란 이유만으로도 공격한다. 지에스(GS)25, 안산 숏컷, 군 위문편지 사태를 떠올려보라. 왜 이토록 백래시가 거센가를 고민했는데, 내 답은 ‘정치가 문제’였다. 정치의 언어는 통합적이고 포용적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조롱과 분열의 언어가 됐다.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것인데도, 페미니즘을 마치 남성을 짓밟는 도구처럼 여긴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정치는 어떻게 다 같이 평등할 거냐를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불평등을 득표 전략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 (갑자기 목소리를 키우며) 정말 그러지 좀 맙시다! 남성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건 군대 문제다. 여성이 아닌 국가가 해결할 문제다. 또래 여성에게 백래시를 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책임자와 ‘맞짱’을 떠야 하는 사안이다. 심상정 후보는 모병제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눈여겨 봐달라.”
―‘정의당=페미당’이라는 인식이 있다. ‘페미당’이라는 이름표와 ‘지지자 확장’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정의당 내부에 고민과 대안이 있나.
“‘페미당’이 ‘성평등을 추구하는 정당’을 의미하는 거라면 예스(yes)다. ‘페미당’을 여성 ‘만’을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한다면 그건 가위표다. 우리 당은 성평등을 추구하고, 소수자 대변하는 정당 맞다. 이런 고민은 있다. 정의당이 성평등을 말할 때 미디어가 더 많이 주목한다. 거대 양당과 차별화된 메시지이니 그런 것 같다. 반대로 노동·복지 공약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다. 거대 양당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노동·복지 분야를 더 끌어올려 균형을 갖춰야 한다. 그동안 제대로 이름 불리지 않았던 ‘불안정 노동자’를 대신해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대 양당 후보가 2030 남성의 마음을 잡으려 경쟁하는 사이 , 여성 유권자들은 상당한 소외감을 느낀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이 소외감이 정의당 지지로 곧장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동의한다. 정의당이 여성 유권자에게 ‘호감’은 줬는데 ‘확신’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당 청년 여성 정치인들이 성평등 이슈마다 메시지를 적시에, 적절하게 주고 있으나 당 차원의 조직적인 뒷받침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때도 메시지가 갈렸는데(당시 심상정 후보는 박 시장을 조문했고, 장혜영 의원은 이를 비판했다) 이런 것이 쌓여 여성 유권자에게 ‘정의당은 안전한, 확실한 내 편’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 게 아닐까.”
“내 편이라는 확신 주지 못한 게 아닐까”
―정의당이 ‘무고죄 처벌 강화’(윤석열 후보 성평등 공약) 같은 문제적인 공약에 대해서 비판을 하지만, 논의 지형을 뒤흔드는 공약이나 어젠다 제시는 미흡하다는 인상도 받는다.
“정책 개발 역량에도 일부 아쉬움이 있다. 성·재생산권처럼 다른 당에서 추진하지 못하지만 여성들에게 중요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제시했으면 한다. 예컨대 임신중지약물 도입 및 의료보험 적용, 육아휴직 거부 기업에 대한 강화된 페널티, 비혼 출산 지원,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기업에 책임 부과 같은 정책들이다.”
―여가부 폐지가 주요 쟁점이다. 이 논의가 지금 필요하다고 보는가.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성평등 추진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후보들도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여가부를 폐지할지 말지는 그 방법론으로 다뤄져야 할 사안일 뿐이다. 윤석열 후보가 일곱 글자로 여가부 폐지 공약을 발표했는데, 그에 대한 대안조차 말하지 않는다.”
―정의당의 여성 정치는 어떻게 다른가.
“일단 ‘젠더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성(gender)이 진입장벽이 되거나 기회를 앗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면에서 이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동안 젠더 정치는 남성을 경유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운동 세대도 남성이 먼저 자리를 잡고 나서 여성이 자리했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런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경제적 자원이 너무 빈약했으니까.
정의당은 남성을 경유하지 않는 젠더 정치를 꿈꾼다. 내 친구 ‘류장강’(류호정 의원·장혜영 의원·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과 함께 젠더 정치의 세력을 키우고 싶다. 당신들(유권자)의 경험을 가지고 싸워나가겠다. 권력으로 인해 성착취, 성폭력 당하는 일의 뿌리를 뽑을 것이다.”
―윤석열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미투 폄훼 발언이 공개됐다. 500여 일 동안 김지은씨를 조력했던 활동가로서, 이 발언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그 발언을 방송에 내보낸 것부터 부적절했다.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고, 안희정 전 지사도 출소를 앞두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런 조롱 섞인 발언을 내보낸 <문화방송>(MBC)에 유감이다. 대선후보 배우자의 그릇된 인식을 미리 알게 됐다는 측면에서 일말의 공익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권력형 성폭력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고착화하는, 부정적 요소가 더 크다고 본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