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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가부장제 아래 민주시민 될 수 없다” 90대 가족법의 대가

등록 2021-12-28 18:41수정 2022-03-17 11:58

[가신이의 발자취] 김주수 교수(1928~2021)
남녀와 부부 평등한 가족법 개정에 평생 분투
호주제 폐지 기틀 마련한 김주수 선생님 영전에

김주수 교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공
김주수 교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공

1955년 경희대 교수 부임 때부터
호주제 근간 민법에 문제 느껴
가족법학회 만들고 민법 비판 책
호주제 폐지 이론적 근거 마련
유림 반발 성균관대 쫓겨나다시피

“민주주의·평등 이상, 학문 연구로 구현”

지난 19일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영면 소식을 접하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선생님이 함께한 가족법개정 운동의 많은 순간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2005년 3월 18일 세종홀에서 열린 ‘호주제 폐지 축하연’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축하 말씀을 해주시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당시 김주수 선생님은 “가부장적 가족제도 아래서 자란 사람은 민주시민이 될 수 없다”라고 하시며 민주사회의 근간으로서 민주적인 가족제도와 가족법에 관해 설명하고 또 호주제 폐지에 대해 “학자로서 보람”을 느낀다는 소회를 밝히셨다. 가족법개정의 산증인다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선생님은 우리나라 가족법의 대가로 부계혈통남계혈통을 근간으로 해온 우리나라 가족법의 흐름을 수차례에 걸친 가족법개정을 통해 부부평등과 남녀평등의 내용으로 바꾸는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고 또 가족법개정 운동에도 직접 참여해 법 개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셨다.

우리 민법에서 가족법 즉 친족·상속 편은 제정 당시부터 부계혈통 위주의 남녀 차별적 내용으로 개정논의를 불러일으켰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1956년 설립 당시부터 가족법개정을 위해 중심 노릇을 했고, 선생님 역시 석사학위를 받은 1955년 27살에 경희대 법대 교수로 부임할 때부터 호주제를 근간으로 한 당시 민법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1963년 가족법학회 창립을 주도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1964년에는 기존 민법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은 <친족상속법> 교과서를 단독저서로 발간하신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경희대에서 약 20년 가까이 재직하다 1974년 성균관대 법대로 초빙받았다. 성균관대로 가신 뒤에도 당시 상담소 이태영 선생님과 호주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가족법개정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다가 결국은 유림 반발로 성균관대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연세대로 옮기셨다. 이는 지금도 선생님을 아시는 분들 사이에 회자하는 유명한 사건이다.

선생님에 대한 필자의 첫 기억은 1970년대 개정 가족법 법안 내용을 검토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하시던 열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2005년 호주제 폐지 축하연은 물론 가족법개정 운동의 주요한 장면마다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과 상담소의 인연은 1973년 4월 가족법개정을 촉구하는 상담소 강연회에 선생님이 참석하신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뒤로도 1984년 ‘가족법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 등 가족법 개정과 관련한 상담소의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등 상담소와 한마음으로 가족법의 현대화, 인간화를 위한 노력에 궤를 같이하셨다.

2005년 열린 호주제 폐지 축하연에 참석한 김주수(오른쪽 다섯번째) 교수와 곽배희(오른쪽 네번째) 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공
2005년 열린 호주제 폐지 축하연에 참석한 김주수(오른쪽 다섯번째) 교수와 곽배희(오른쪽 네번째) 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공

많은 이들이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그 괴리를 당연시하거나 합리화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당신이 갈고닦았던 학문 세계에서 남녀평등과 부부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가족법으로 구현하기 위해, 현실의 가족법개정 운동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으셨다. 이러한 선생님 발걸음은 평생 한결같았으며 그 결과 마침내 호주제 폐지로 우리는 양성평등하고 부부 평등한 가족법을 갖게 되었다. 학문적으로는 깊이 있고 냉정하며, 실천에는 적극적인 학자셨으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저희에게는 더없이 자애로운 어른이셨던 김주수 선생님.

가족법개정에서 선생님과 함께 큰 산을 넘어왔으나 완전한 평등, 가족 구성원 전체의 복리를 위한 가족법을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선생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만 선생님이 생전에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가족법개정을 위한 여정에 쉬지 않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그 길에 자제분이신 김상용 교수가 있어 다행스럽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서는 고향인 평안남도 성천의 산세를 닮았다는 가평의 양지바른 곳에서 평안하시길 빕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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