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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육퇴한 밤] 최현정 아나운서 “이렇게 영영 잊힐거야? 울컥했다”

등록 2021-12-23 19:59수정 2021-12-23 21:48

유튜브채널 <육퇴한 밤> 출연, 최현정 전 MBC 아나운서
수필집 내며 ‘빠르게 잊힌, 전직 아나운서’라 쓴 이유는?

유튜브 채널 &lt;육퇴한 밤&gt;에 출연한 최현정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육퇴한 밤>에 출연한 최현정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화면 갈무리.

‘이곳에서의 성행위를 엄중히 금지합니다.’

제주 해변을 거닐다 커다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보니 ‘상행위를 금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를 갔는데, 정신이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글씨를 읽은 게 다행이라니까요. 육아하는 엄마가 얼마나 정신없는지 그걸 딱 증명해 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23일 ‘육아 동지’ 유튜브 채널 <육퇴한 밤>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최현정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이야기다. 지난 11월 에세이 <유일한, 평범>(21세기 북스)을 펴냈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오랜 소망을 이뤘다.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책 표지 뒤로 ‘빠르게 잊힌, 전직 아나운서’라는 소개말이 적혀있다.

“출판사 편집자가 ‘자기 비하가 심한 거 아니냐’고 했는데, ‘명확한 상황 인식’이라고 답했어요. (웃음) 사실 방송 그만두고 나니까, 사회에서 금방 없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지 아직도 난감하다고 했다. 2005년부터 10여년간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활약했지만, 170여일에 걸친 파업 이후 퇴사했다. 2017년, 8년을 기다린 쌍둥이 남매의 탄생과 육아로 경력 단절 여성이 됐다. 육퇴한 밤에 만난 ‘현정 언니’의 인생 2막은 여기서 다시 출발한다. (<육퇴한 밤>에선 이야기 손님의 직함 대신 ‘언니’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현정 언니의 목소리는 실로폰처럼 맑고 찰랑찰랑했다.)

유튜브 채널 &lt;육퇴한 밤&gt;에 출연한 최현정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육퇴한 밤>에 출연한 최현정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화면 갈무리.

아이의 출산과 동시에 육아가 시작된다. 방송인으로 일했던 그는 화면에 자주 얼굴을 비쳐야 마땅했지만, 다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번도 사표를 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던 현정 언니가 ‘경력 단절’을 인정해야 했던 순간은 어땠을까.

“아이 낳고 얼마 만에 복귀했다는 방송인들을 보면, 정말 아기 낳은 사람 맞나. 티브이(TV)에 보이고 하면, 반감이 들기도 하고 그러면서 제가 더 초라하게 느껴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선순위를 육아로 정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꾸 되새겨야만 했던 시간인 것 같아요. 육아에 몰입하기도 어려웠지만, 나가서 일하는 것도 엄두도 안 났죠.”

육아에 매여 지내던 어느 날, 아나운서 모임을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물었다. 선배 이렇게 영영 잊힐 거야? 유튜브 채널을 열어 뭐든 올리라고 부추겼다. 길게 늘어지는 엿가락처럼, 쉼 없던 육아에 지쳐있던 때, 울컥했다. 마음속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있었다.

“육아란 이런 것이라는 걸 왜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그럴듯한 포장을 해왔냐고,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외침부터, 이 사회가 암암리에 조장하고 있는 엄마의 죄책감에 대해 우리가 연대하고 부수어 나가자는 책동의 말도, 그럼에도 우리 육아에만 함몰되지 말자고, 누구보다 나에게 하고 싶은 다짐까지. 마이크를 앞에 두고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유일한, 평범> 중에서

유튜브 채널 &lt;최현정의 맘맘티비&gt;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최현정의 맘맘티비> 화면 갈무리.

얼떨결에 유튜브 채널 <최현정의 맘 맘 티브이>를 열었다. 그는 “푸념”이라고 몸을 낮췄지만, 현실의 삶에 발을 붙이고 있는 콘텐츠가 즐비하다.

난임과 시험관 시술 등 쌍둥이를 출산하기까지의 과정들을 소개했고, 양육자들의 관심사인 영·유아, 초등 교육에 대한 진솔한 고민도 담았다. 상담 수련생으로 공부하면서 성찰한 이야기도 영상에 넣었다. 육아와 일상을 오가며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원고를 다듬었고 틈틈이 쪽글을 썼다. 이런 콘텐츠를 글로 써서 책으로 묶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덜컥 계약했다. 2년을 공들여 <유일한, 평범>으로 묶었다. 솔직한 마음을 내보였더니, ‘공감’의 마음이 되돌아왔다.

“독자들 반응을 보면 ‘육아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이 여기 있다’라는 것이었고요. 이런 감정이 엄마가 된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일 수 있다, 엄마로서 갖는 책임감이 ‘엄마가 되면 저절로 이 정도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서서히 내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저한테 되게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덕분에 현정 언니와 함께한 <육퇴한 밤>은 공감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난임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를 기다리는 분들을 향해선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아픔도 있고 힘겨움도 있지만, 떨어져도 백 번씩 더 볼 수 있는 시험”이라고 힘껏 응원했다. 더불어 나이 듦에 대해 대처하는 마음도 들려줬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반가운 이의 영상 인터뷰를 직접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자세한 이야기는 빈칸으로 남겨둔다.

<육퇴한 밤>에서는 책 선물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30일까지 유튜브 영상 댓글이나 이메일을 통해 시청 소감 등을 남기면 된다. 정성스런 후기를 남긴 3분을 선정해 최현정 작가의 신작 <유일한, 평범>(21세기 북스)을 선물할 예정이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Q. 육퇴한 밤은?

작지만 확실한 ‘육아 동지’가 되고 싶은 <육퇴한 밤>은 매주 목요일 오후 8시께 영상과 오디오 콘텐츠로 찾아갑니다. 영상 콘텐츠는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TV, 오디오 콘텐츠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해 공개됩니다. 일과 살림, 고된 육아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육아인들을 위해 중요한 내용을 짧게 요약한 클립 영상도 비정기적으로 소개합니다. ‘구독·좋아요’로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육퇴한 밤에 나눌 유쾌한 의견 환영합니다. lalasweet.nigh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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