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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폭력 은폐하는 ‘치외법권’ 지대, 그 이름 ‘가족’

등록 2021-11-26 13:57수정 2021-11-26 14:12

1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 열려
“가족을 고발한다, 국가는 응답하라”
공소시효 폐기 요구, 법안은 계류 중
1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 기획단 제공
1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 기획단 제공

오는 27일 정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역사적인’ 행사가 열린다. 친족성폭력 생존자 수십명이 서울 한복판에 모여 1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를 연다. 축제의 이름은 ‘죽은 자가 돌아왔다!’. 영화 <코코>로 잘 알려진 멕시코 축제 ‘죽은 자들의 날’에서 영감 받아 붙인 이름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깔려 죽음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공폐단단, 매마토(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의 줄임말) 일인시위 모임이 함께 기획하고 준비했다.

이번 축제는 “죽은 자”처럼 침묵했던 시간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이 축제를 처음으로 제안한 공폐단단 활동가 단단(활동명)은 “2년여 전 한국성폭력상담소 ‘작은 말하기’ 모임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만난 우리가 공개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자리”라며 “우리가 아픔을 겪고 폭력 피해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도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역량 있고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축제 같은 자리를 제안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이 침묵을 깬 건 2년 전 즈음이다. 미투운동이 일어난 이듬해인 2019년 6월 친족성폭력 생존자 푸른나비(활동명)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게 말하기의 시작점이 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에스비에스>(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피해를 증언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방송에 친족성폭력을 만들고 방치한 ‘국가’의 책임은 잘 보이지 않았고, 피해만 부각되어 소비됐다고 느꼈다. 단단은 “에스비에스 사옥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고, 여의도 한 쇼핑몰로 가서 퍼포먼스도 했다. 가족이 많이 찾는 쇼핑몰이라는 공간에서 가족 안의 폭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첫 행동이었다”고 했다. 올해 3월부터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정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 채널 ‘성피당당’에 올렸다. 친족성폭력이 언론의 편견으로 왜곡되어 전달되지 않도록 직접 영상을 만든 것이다. 지난 9월에는 생존자 11명의 수기를 묶어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글항아리)라는 책도 펴냈다. 이런 말하기의 연장선에서 축제도 탄생했다.

오는 27일 열리는 제1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사용할 가면. 공폐단단 제공
오는 27일 열리는 제1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사용할 가면. 공폐단단 제공

‘축제’인 만큼 드레스코드도 있다. 검정드레스·꽃·가면이다. 이 행사의 기획단계에 참여한 공폐단단 활동가 김영서씨는 “죽은 자와 산 자를 모두 안고 살아가는 생존자의 양면성을 구현하기 위해 ‘죽은 자들의 날’을 상징하는 칼라베라 카트리나(꽃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해골)를 모티프로 삼았다”고 했다.

이날 축제에서 생존자들은 친족성폭력 문제에 침묵하는 국가를 향해 항의하고, 공소시효 폐지 등 요구할 예정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금껏 국가는 국가가 해야 할 돌봄, 생계 등의 의무를 가족에 떠넘기는 대신 가족을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대로 만들어버렸다. 가족 안에서는 폭력도 보이지 않게 되고, 법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행동으로 공소시효 폐지를 지목했다. 현재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는 기본 10년(DNA 같은 과학적 근거 있으면 20년)이다. 다만 특례조항으로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성년이 된 기점부터 공소시효를 적용하고, 피해자가 13살 미만이면 공소시효가 없다.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55.2%가 피해를 상담소 등에 알리기까지 10년 이상 걸렸다는 사실(한국성폭력상담소·2019)에 비춰보면 죄를 묻기에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국가가 가족을 방치해 발생한 반인륜적 범죄인 만큼, 친족성폭력 문제에 있어서는 국가가 형벌권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에는 친족 대상 모든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경찰이 집계한 친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776건이었다. 여성 긴급전화 1366에 접수된 피해 상담은 이에 3배 가까이 되는 2106건이다. 지금도 하루에 2∼6건씩 가족 내 성폭력은 발생하고 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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