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는 여성의 몸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막상 임산부가 돼 산부인과를 찾으면, 여성의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해 질문하기가 어렵다. 뱃속 아이만 건강하다면, 여성이 겪는 문제는 모두 괜찮은 걸까?
18일 유튜브 채널 <육퇴한 밤>에선 32년 경력의 산부인과 전문의 나오순 김포나리여성병원 원장을 초대했다. 그는 “매일 아침 호르몬 한 알과 파스 한 장으로 출근길에 나서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그냥 대한민국 아줌마”라는 유쾌한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진료실에서 묻고 싶었던 것을 대신 물어봤다. 또 그와 동료가 고민한 ‘감성 분만’ 시스템을 도입한 계기와 이유도 물었다. 산부인과 의료 현장에서 여성을 위한 출산은 가능할까?
유튜브 채널 <육퇴한 밤>이 초대한 산부인과 전문의 나오순 김포나리병원 원장. 화면 갈무리.
“첫 아이 낳고 둘째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분만하는 과정이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느낌이었어요.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아파 죽겠는데 반듯하게 누워 있으라고만 했죠. (중략) 실수 반, 계획 반으로 둘째를 낳았지만 (산부인과 의사인) 저도 출산이 너무 두려웠어요.”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에게도 출산의 두려움과 기억은 생생하다. 출산 과정을 개선해보고 싶었다. 동료와 고안한 게 ‘감성 분만’이다. 아기와 엄마에게 서로를 각인시켜주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게 감성 분만의 취지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밝은 불빛 아래에서 깡깡 우는데, (신체에 이상이 없는지) 몸부터 샅샅이 보고 관찰하는 게 맞을까요. (중략) 산모가 진통하는 동안 아기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마가 받는 스트레스의 13배 정도 더 많다는 얘기가 있어요. 출생 직후 카테콜아민이란 교감신경 자극전달 물질이 가장 많이 배출된다고 해요. 오감이 가장 발달해 있고 그때 아기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인지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걸 ‘각인’이라고 하죠. 첫 번째 각인의 대상을 엄마로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엄마도 마찬가지예요. 아기를 인식하고 각인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출생 직후예요.”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이 겪는 고통과 공포감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가 너무 고생하면 아기가 안 예뻐요.”(웃음) 그래서 가능한 몸을 움직이게 하고, 두려운 마음을 살피는 방법을 찾았다. 분만실에 명상실도 만들고, 노래방 기계도 설치하고, 게임방을 열게 된 이유다.
“산타루치~아! 노래하면서 힘을 주는 거예요. 일본의 출산 문화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요. 출산할 때, 어차피 소리를 지르게 돼 있고요. 진통 중에 노래 부르면서 박자에 맞춰 숨을 고르는 거죠. 우리가 방탄소년단과 싸이를 배출한 민족 아닙니까. 애창곡 하나 없는 사람 없잖아요. 노래하는 것도 복식 호흡을 하는 거잖아요. 호흡 훈련도 하면서 기분도 전환하고 진통하는 도중에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잊을 수 있어서 노래방을 설치했는데, 노래 한 곡 부르시고 나와서 아이스크림 하나 드시면 딱 맞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 나오순 원장. 화면 갈무리.
임산부가, 또 한때 임산부였던 여성들이 진료실에서 머뭇거렸던 질문들도 정리해봤다.
① 자연분만 vs 제왕절개, 출산 방법 선택은?
첫 아이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출산 방법(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을 의논할 때, 나 원장은 뭐라고 말해줄까.
“산모 몸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요. 두려움에 떨면서 자연분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아기는 산모나 의료진 의지로 나오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엄마와 아기 둘이 협동을 잘해야 아기가 나오는데, (출산하는 날) 아기 협동이 미진할 수도 있고 엄마가 너무 무서울 수도 있어요. 무리한 출산은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 고생하면 아기가 안 예뻐요. (웃음) 제왕절개 수술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거의 없지만, 분만 방법의 하나고 아기도 엄마도 건강하다면 그게 정상분만 아닌가요.”
사실 산부인과엔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초음파 화면에 아기집이 보이지 않거나, 아기의 심장 소리가 멈춘 진료실엔 침묵이 흐른다. 사그라진 생명은 출혈로 자연 배출되기도 하지만, 자궁 내막을 긁어내는 소파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유산 판정을 받은 산모가 차가운 수술대에 오르면, 출산의 고통과는 다른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든다고 한다. 그 순간 나 원장은 산모의 손을 잡아준다.
“의식이 없어진다는 건, 굉장히 두려운 일이에요. 저도 아이 낳으며 수술도 받아봤으니까, 그 순간이 제일 무서운 순간이기 때문에 손을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유산은 여성의 잘못은 아니지만, 수술하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아요. 할머니가 돼도 잊어버리지 못하더라고요. 안 좋은 기억을 평생 짊어지고 간다는 건 슬픈 일인 것 같아서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손을 잡게 됐어요.”
산부인과 전문의 나오순 원장(왼쪽)과 박수진 기자. 화면 갈무리.
② 고령 산모, 아이 낳아도 괜찮은가요?
35살이 되면 ‘고령 산모’라 낙인되는 한국 사회. 고령 산모가 통과해야 하는 산전 검사는 수두룩하다. 나이 때문에 겪는 고민도 두 배 많아진다. 그런 고민에 ‘의사답지(?) 않은’ 대답이 이어졌다.
“고령 산모니까 태아가 기형아 위험성이 높고 뭐 이런 얘기는 해서 뭐하겠어요. 이미 아기가 생겼는데, 검사해가면서 산모 상황에 맞춰 대처하면 되는 것이고요. 저의 대답이 너무 의사답지 않은 대답일지 모르겠는데, ‘자식 농사는 빨리 시작한다고 빨리 끝나는 게 절대 아니다. 늦게 시작할수록 조금 하는 거니까. 잘됐네’” (웃음)
③ 출산 뒤, 여성이 겪는 신체·정신적 변화는?
출산 전엔 잘 몰랐다. 아기를 낳은 여성의 몸과 마음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역시 겪어봐야 아는 것일까? 나 원장의 설명을 요약하면 출산 후, 일주일 내로 양쪽 가슴엔 모유가 찬다. 호르몬 영향으로 정신적으로 울적한 마음도 든다. 그는 “유즙분비 호르몬이 프로락틴 수치를 높이는데, 공격성과 우울감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우울하면, 엄마 자격이 좀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데, 전혀 죄책감 느낄 필요 없다. 생리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생리통처럼 배가 쿡쿡 쑤시는 훗배앓이도, 유방 통증도 계속된다.
“젖몸살이 생기면, 가슴을 칼로 저미는 것처럼 아프죠. 너무 고통스러우면 모유 수유를 하지 말고 힘들면 분유 수유도 괜찮다”고 조언한다.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할 즈음 젖량은 줄고, 모유 수유가 끝나면 생리가 시작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건, 부부생활이다. “부부 간 욕구에 상충이 생기다 보니까 싸움이 좀 일어나기도 하고, 여성들은 성교통을 느끼거든요.” 실제 이런 문제로 진료실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아이를 품었던 10개월, 여성의 몸이 회복되는데 10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오는 25일 나 원장의 두 번째 인터뷰가 공개된다. 산부인과 의사는 어떻게 아이를 키웠는지 물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Q. 육퇴한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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