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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많아야 서른, 벌써 세차례 이직…쌍팔년도 직장에 좌절한 그녀들

등록 2021-11-16 18:07수정 2021-11-16 18:30

한국여성노동자회 90년대생 여성노동자 분석
성차별 선발 등 채용 불공정 50% 이상 느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단 커피 심부름 정말 기본이구요. 손님이 오든 경영진이 출근을 하든, 티(차)나 커피를 꼭 여쭤봐야 돼요. 그래서 이건, 아 진짜 아, 영화에서만 보던 쌍팔년도 회사의 그 분위긴데 그게 내 회사였네? 라는 생각이 좀 들었었구요.”

“우리는 다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여자가 뽑힌 적이 있냐 그랬더니(물었더니) 되게 민망해 하면서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연봉이 인상되는 폭이 이렇게 내가 성과를 보여준 것보다… 왜 이것밖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이 좀 소폭 인상이 되다 보니까.”

- 한국여성노동자회 보고서 ‘유예된 미래와 빈곤을 만드는 노동’ 발췌

90년대생 여성노동자는 왜 이직을 거듭할까. 그들이 일하는 환경은 어떤 모습이고, 일의 의미는 무엇이며,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이 질문들에 실마리를 얻기 위해 올해 6~9월 질적·양적 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16일 발표했다. 90년대생 여성노동자 19명을 심층 인터뷰한 뒤, 이를 토대로 문항을 구성해 90년대생 노동자 4744명(여성 4632명, 남성111명, 기타 31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0.2%는 취업 상태였다. 정규직(64.7%)이 가장 많았고 기간제(11.3%)와 시간제(7.6%)가 뒤를 이었다. 취업 상태인 응답자 가운데 약 10%는 직업이 한 개 이상인 ‘엔(N)잡러’였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 70%가 최근 3개월 동안 150만∼300만원 미만을 받고 일했다고 답했다.

90년대생 여성노동자들은 한 직장에서 짧게 일하고, 이직하는 비율이 높았다. 한 번이라도 일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노동자 가운데 67.8%가 ‘이직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직횟수는 1회(21.3%), 2회(15.9%) 3회(14.2%) 4회(7%) 5회 이상(9.4%)였다. 근무 기간은 2년 미만이 전체의 81%에 달했다. 설문 분석을 맡은 박선영 중앙대 중앙사회학 연구원은 “90년대생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은 △일 시작 이후 평균 3회 이직하고 △3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에서 △월 평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다가 △2년이 되기 전에 다른 일자리로 이직했다고 요약된다”고 했다.

이직한 이유가 △해고나 기간만료 △권고사직 △자발적 퇴사 중 무엇인지도 물었다.(중복 응답) 해고나 기간만료로 이직하게 된 비율은 45%, 권고사직 비율은 22.7%, 자발적 퇴사 비율은 94.5%였다. 이 가운데 자발적 퇴사의 이유로는 △근로여건(보수·시간·환경) 불만족 △전망이 없어서 △회사 내 인간관계 때문 등이 주로 꼽혔다.

여성노동자의 구직활동 경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물었다. ‘채용과정이 공정하냐’고 물었더니 여성 응답자의 52.4%가 “아니다”고 답했다. 무엇이 문제였냐고 물었더니(중복 응답) △급여를 공개하지 않는 채용 공고(17.2%) △모집 과정에서 성별 제한은 없지만, 여성은 거의 뽑지 않는 관행(16.8%)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많았다. 또 △면접과정에서 성차별(9.5%) △이력서 제출 시 성별 제한(9.4%) 등을 겪었다는 응답도 상당했다. 채용 과정이 공정하지 않은 이유로 채용 성차별을 꼽은 비율이 전체의 35.7%에 이르렀다.

90년대생 여성의 비혼 선호 경향은 뚜렸했다. ‘앞으로 누구와 함께 살기를 희망하느냐’는 문항에 응답자의 51.9%가 ‘반려동물+나혼자’를 선택했고, ‘법적 배우자+자녀’를 택한 비율은 30.1%였다. 박 연구원은 응답자 소득과 희망하는 가족 구성의 상관관계를 교차분석했는데, 소득이 높을수록 ‘법적 배우자+자녀’를 선택한 비율이 높고, 적을수록 ‘반려동물+나혼자’를 선택한 비율이 높았다. 이를 두고 박 연구원은 “이는 한국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던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남성이 가족 생계 부양을 전담한다는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응답 결과”라고 했다.

심층인터뷰를 통해 질적 연구를 진행한 최혜영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연구원은 “90년대생 여성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일은 디폴트(기본), 결혼·출산은 옵션(선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이처럼 일을 중심으로 존재 가치를 찾고 있는데도 구시대적·비민주적·성차별적 조직문화가 이들의 노동 안정성을 위협하고, 이로 인해 90년대생 여성노동자들은 ‘존재적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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