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 차관은 ‘여가부 폐지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여가부의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를 거론하면서 “이런 분들이 우리 여성가족부가 없다면 어디에서 이런 도움을 받으실 수가 있을까”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자리에 불과하다.”(유승민 전 의원)
“여가부는 젠더 갈등을 부추겨왔다.”(하태경 의원)
“여가부가 지금까지 꾸준히 예산을 받아서 활동했음에도 지난 10년간 젠더 갈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이준석 당대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에 이어 7일 이준석 당대표가 ‘여가부 폐지론’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대표까지 ‘여가부 폐지’에 힘을 싣자 국민의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권성동 의원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당 의원 중 상당수는 여성가족부 무용론에 공감하는 편”이라며 “(여가부 폐지 공약으로) 여성들의 표가 달아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발언은 △성폭력 대응과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 수립 등 여가부의 고유한 역할을 외면하고 △노동시장 성별 격차, 젠더 폭력, 돌봄노동 편중 등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별을 가르는 소모적 분열의 정치를 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여가부 20년 성과 및 현실 속 성차별 문제 외면
사실 여가부 폐지론은 정권 교체기 전후 때마다 등장할 정도로 해묵은 논란이다. 2008년 1월 당선자 신분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성가족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며 여가부를 평가절하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17년 대선을 치를 때도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적은 예산과 권한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여가부가 추진해온 정책들은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인 해바라기센터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해온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이 대표적이다. 2018년 4월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운영을 시작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경찰 등과 협조해 불법촬영물 삭제 서비스를 지원해왔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이 센터가 지원한 피해 건수는 30만5996건에 이른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유사한 문제로 씨름하는 다른 국가에도 모범이 될 만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최근 개정안이 통과된 ‘양육비 이행법’을 추진해,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받는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인 여성과 아동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을 마련한 것도 보건복지부가 아닌 여가부였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 시작된 ‘아이돌보미’ 사업의 경우, 시설보육의 사각지대를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 이용 가구는 56만6033가구에 이른다.
물론 여성계 안에서도 여가부가 여성 권익 향상과 성평등 실현이라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엔 이명박 정부 때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축소하면서 예산을 1조1994억원에서 2008년 539억원으로 90% 이상 줄이는 등 여가부를 축소하려는 정부 차원의 비협조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논란은 대선을 의식하고 이른바 역차별을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동’에 가깝다는 점에서 여성계에선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여가부에 대한 관점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가부의 예산을 의무 복무 다녀온 청년들을 위해 쓰겠다’ ‘여가부 장관은 전리품이다’ 같은 여가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주장까지 이 범주로 보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여가부 장관을 역임한 두 인사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역임했던 김금래 전 장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전세계 90여개 나라가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부서를 두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할 부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여가부가 유일하다”고 했다. 역시 이명박 정부 때 장관을 지낸 백희영 전 장관도 “고용 현장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불이익과 폭력은 아직도 매우 심각하다. (각 부처가 여가부 업무를 나눠 하면 된다는 주장은) 시기상조이고, 하필 선거철을 앞두고 이런 주장이 나온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0 세계 성 격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53개국 중 108위로 최하위권이다. 성별 임금 격차 역시 32.5%(2019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1위다.
이준석 대표 특유의 ‘성별 갈라치기’에 국민의힘 안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선주자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유리천장도 남아 있다. 청소년을 응원하고 가족부로서의 기능도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는 시급하지 않다”고 썼다. 그는 “여가부가 제 기능을 못한 책임은 이 정권에 있다”며 “정권에 물어야 할 책임을 여가부에 떠넘기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희숙 의원도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소년과 다문화 가정, 성폭력 등을 여가부에 떼어놓은 이유는 다른 부처에서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여가부 폐지는 딱 칼로 자르듯이 얘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조수진 최고위원은 6일 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거나, 그것을 통해서 한쪽의 표를 취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결의 ‘분열의 정치’를 하자는 것”이라며 “문재인식 ‘분열의 정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분열을 꾀하는 것, 분열을 획책해 이익을 취하려는 작태, 이것은 더 비판받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대선 공약으로 ‘여가부 폐지론’을 띄우는 것은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대선주자는 자기 신념대로 공약을 낼 수 있지만, 대표가 앞장서서 다 같이 따라오라고 권유하는 방식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도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하지만, 여성 참여율은 단 11%에 불과할 만큼 아직도 국민의힘이 여성의 마음은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한 여성 의원도 “이 대표가 그동안 20대 남성을 대표했던 건 대표로서가 아니라 ‘개인 이준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당이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차기 대선 전략을 잡으면 안 된다. 새로운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공약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윤아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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