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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카메라 이용 성범죄 연간 6천건…‘변형카메라 관리법’ 왜 안 만드나

등록 2021-06-22 04:59수정 2021-06-22 07:33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변형 카메라들. 사진 판매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변형 카메라들. 사진 판매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상대방 노출 없이 안전하게.”

‘스마트폰 디자인 캠코더’ 광고 문구다. 이름 그대로 스마트폰처럼 생긴 카메라다. 일반 스마트폰은 디스플레이가 켜져야 촬영이 가능한데, 이 제품은 디스플레이가 꺼진 상태에서도 ‘매복’된 카메라를 통해 촬영이 가능하다. 판매자는 “합법적으로 인증 받아 판매되는 제품이라 법적인 문제가 없다. 부엌칼은 불법이 아니지만 (칼을) 들고 남의 집 넘어가면 범죄도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홍보한다. 광고 이미지 속 남성은 침대 옆 협탁에 이 제품을 올려두고 촬영 버튼 누르고 있다. 한 판매사이트에서 ‘주문 폭주’ ‘베스트’ 표시가 붙은 채 52만원에 팔리고 있다.

일상 생활용품 또는 그런 모양을 한 물건에 촬영·녹화·전송 기능을 심어놓은 제품을 ‘변형 카메라’라고 부른다. 카메라는 물병, 액자, 펜, 안경, 넥타이 핀, 탁상시계, 보조배터리 등 웬만한 모든 물건에 심을 수 있다. 변형 카메라는 수사나 위장취재 등에 쓰이곤 하지만 불법 촬영에도 쓰인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16일 한국 디지털 성범죄 실태 보고서를 통해 “기술적 혁신이 어떻게 젠더 폭력을 조장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메라가 내장된 탁상시계를 통해 한 달 간 자신의 일상이 고스란히 ‘스트리밍’된 여성의 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카메라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는 2019년 5762건에 달했다. 수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해마다 6천건 안팎인 점에 비춰볼 때 드러나지 않는 피해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불법 촬영 피해가 끊이지 않자 18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초소형 카메라 판매 금지’ 청원이 올라왔다. 21일 오후 5시 현재 동의자가 9만명을 넘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변형 카메라들. 사진 판매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변형 카메라들. 사진 판매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변형 카메라들. 사진 판매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변형 카메라들. 사진 판매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앞서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몰카(불법 촬영)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대책을 지시했다. 그해 9월 정부는 “인터넷 등에서 변형 카메라를 손쉽게 구입해 불법 촬영 행위가 가능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변형 카메라 수입·판매업자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불법 촬영을 근절해야 한다는 요구는 ‘신기술 발전 저해론’에 번번이 밀렸다. 19~20대 국회에 모두 4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법안 검토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2018년 11월 관련 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려고 하는 것인가. 여러 가지 기술 개발을 틀어막는 형태로 가는 것은 대단히 문제가 많다”(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는 의견이 나왔다.

21대 국회에도 변형 카메라 판매자 및 구매자 등록, 대여·양도 금지, 도난·분실 신고, 제조방법 게시·유포 금지 등을 담은 변형 카메라 관리법안이 발의돼 있다. 법안을 검토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카메라 기술이 자동차·의료·산업·국방 등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범죄 예방과 산업육성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 3월 이 법안을 발의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열린 토론회에서 “(이 법안이) 자꾸 규제라고 표현되는데, (변형 카메라 취급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어디서 쓰고 있는지 파악해 문제가 발생하면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권창범 변호사는 “변형 카메라를 원천 금지 하자는 게 아니라 이력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축산물도 이력을 관리한다”며 일각의 기술 발전 저해 주장을 반박했다.

공공 안전을 위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도구는 국가 차원에서 관리한다. 1962년 제정된 총포화약법은 총포·도검·화약류를 제조·판매·임대·사용할 경우 원칙적으로 판매·소지 허가 등을 받도록 하고 있다. 흔히 쓰이는 전자충격기와 분사기도 이 법 규제 대상이다. 영화 소품으로 사용하는 무기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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