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날마다 새 2만마리 죽이는 유리벽, 스티커로 생명 살리는 ‘새친구들’

등록 2021-06-13 18:22수정 2021-06-14 09:51

용인서 녹색연합 ‘새 친구 스티커 부착 행사’ 열려
사람 눈에는 거의 안 띄는 격자무늬가 새들 목숨 살려
“부착 후 조류 사망 10분의 1로 감소”
지난 12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의 초등학교 앞 투명 방음벽. 새들이 부딪혀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가로 10cm, 세로 5cm 간격으로 흰 스티커를 유리창에 붙이고 있다. 스티커가 붙은 방음벽에는 추돌하는 새가 10% 미만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호성 기자
지난 12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의 초등학교 앞 투명 방음벽. 새들이 부딪혀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가로 10cm, 세로 5cm 간격으로 흰 스티커를 유리창에 붙이고 있다. 스티커가 붙은 방음벽에는 추돌하는 새가 10% 미만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호성 기자

뙤약볕이 내리쬐던 12일 낮,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함박초등학교 앞 방음벽 앞에 시민 30여 명이 막대자와 흰색 스티커를 들고 모였다. 이들은 투명한 유리에 스티커를 붙여 새들의 충돌을 막는 ‘새친구들’이다. 학교 운동장과 야산 사이에 놓인 80m 길이 방음벽에 스티커로 격자무늬 점들을 채워 넣는 게 이날 목표다. 한 땀 한 땀 붙이는 점 하나하나가 바로 새를 구하는 일이기에 새친구들은 연신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방음벽 앞에 섰다.

“매일 전국에서 유리에 부딪혀 죽는 새가 2만 마리에 달합니다. ‘눈 깜빡할 새’마다 한 마리가 목숨을 잃는 것이지요.”

이날 행사를 주최한 녹색연합의 활동가는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조류의 유리창 충돌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야생의 새들은 시속 30∼70km의 빠른 속도로 나는데, 건물의 유리 외벽을 ‘뚫린 공간’으로 착각해 부딪치면 대부분 즉사한다. 환경부의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한 해 국내에서 건물 유리창에 부딪히는 조류는 765만 마리, 방음벽에 충돌하는 조류는 23만 마리로 추정된다.

특히 아파트 단지와 자연녹지 사이에 세워진 방음벽은 양쪽을 옮겨 다니며 먹이를 구하는 새들의 ‘무덤’이 되기에 십상이다. 강승남 녹색연합 활동가가 방음벽 앞 까치 사체를 가리키자 참가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오늘 이 방음벽 주변에서만 박새, 쇠딱따구리 등 4마리의 사체가 발견됐어요. 부모 새가 죽으면 새끼들도 생존할 수 없어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입니다.”

지난 12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의 한 방음벽에 부딪혀 떨어져 죽은 새끼 박새. 이 방음벽 주변에서는 이날에만 4마리의 야생조류가 죽은 채 발견됐다. 천호성 기자
지난 12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의 한 방음벽에 부딪혀 떨어져 죽은 새끼 박새. 이 방음벽 주변에서는 이날에만 4마리의 야생조류가 죽은 채 발견됐다. 천호성 기자

이날 작업은 처인구청의 허가를 받고 진행됐다. 새친구들은 ‘5×10원칙’에 따라 작업을 했다. 방음벽 유리에 사인펜으로 가로 10cm, 세로 5cm 간격으로 점을 표시한 뒤, 이 점들 위에 손톱만 한 크기의 흰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이다. 스티커는 사람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새들은 이 작은 점들 덕분에 유리창을 ‘허공’이 아닌 장애물로 인식한다. 새들은 좁은 공간으로는 날지 않는 습성이 있어 장애물로 보이는 격자무늬 유리창을 피해 간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오차가 생기지 않도록 막대자로 꼼꼼히 간격을 재며 스티커를 붙였다. 스티커가 금방 떨어지지 않게 유리 표면의 먼지를 닦아내는 세심함은 ‘기본’이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유리에도 사다리에 올라 스티커를 붙이며 구슬땀을 흘렸다. 7살, 4살 두 딸과 나온 근처 주민 이금희(46)씨는 “고사리손으로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며 “딸들이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새친구’가 된 것에 뿌듯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2시간에 걸친 작업으로 방음벽의 150장이 넘는 유리가 하얀 점으로 채워졌다. 앞서 충남 서산시의 649번 지방도 등에서 새친구들이 같은 작업을 한 뒤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새가 10분의1 이하로 감소했을 만큼 효과가 뚜렷하다는 게 녹색연합의 설명이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꿈인 신영훈(17)군은 “지난주 참여한 행사로 새 충돌 빈도가 크게 줄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도 대전에서 올라오게 됐다. 활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친구들은 작업 지역을 정할 때 생태관찰 애플리케이션인 ‘네이처링’을 활용한다. 네이처링은 시민들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생물을 관찰했는지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를 기반으로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데,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항목에는 지금까지 2만 건 넘는 조류 충돌 사례가 기록됐다. 녹색연합은 신고가 잦은 서울 시내 방음벽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활동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새친구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방음벽에 흰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천호성 기자
‘새친구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방음벽에 흰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천호성 기자

새친구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새들이 충돌하지 않게 건물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음벽 등 공공시설과 건물의 유리창에는 건설 때부터 격자무늬 눈금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기에 좋다는 등의 이유로 외벽 전체를 유리로 설계하는 건물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봉사활동만으로는 조류 충돌을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민단체는 물론 환경부와 국립생태원 등도 네이처링에 쌓인 데이터를 열람하며 개선책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은정 녹색연합 녹색생명팀장은 “유리벽에 부딪쳐 죽는 새들의 실태가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드러나면 시민과 정부기관, 기업들의 관심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며 “전체 건물의 20% 정도인 공공건물에 격자무늬를 우선적으로 도입해도 가시적인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다리에 올라 방음벽 유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들. 독자 제공
사다리에 올라 방음벽 유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들. 독자 제공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