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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용구 사건 외압·청탁 없어”…납득 어려운 경찰의 ‘셀프 수사’

등록 2021-06-09 15:40수정 2021-06-10 02:46

약 5개월 걸린 진상 조사 결과 발표
서초서장·형사과장·팀장 자체 감찰 진행
‘셀프 수사’ 한계 비판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재직 중이던 지난 1월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재직 중이던 지난 1월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봐주기·부실 수사’ 의혹을 조사한 경찰이 “부정한 청탁이나 외압은 없었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약 5개월 동안 이 사건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당시 이 전 차관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 한 명만 검찰에 송치해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경찰청(서울청)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ㄱ경사를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것이라고 9일 밝혔다. ㄱ경사는 지난해 11월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그를 입건하지 않고 단순폭행으로 내사 종결했다. 이에 서초서가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이 언론에 최초 보도된 뒤 서초서는 “(이 전 차관이) 평범한 변호사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고, ㄱ경사도 택시기사가 갖고 있던 이 전 차관의 블랙박스 영상을 본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모두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ㄱ경사가 수사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열람했던 사실을 확인한 서울청은 같은달 24일 13명 규모의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ㄱ경사는 지난해 11월11일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은 채 윗선에 보고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초서는 바로 다음 날(11월12일) 택시기사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는 등의 이유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아닌 단순폭행죄를 적용해 이 전 차관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 ㄱ경사가 속한 수사팀 팀장과 형사과장, 서초서장 등이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11월9일께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서울청은 최종적으로 ㄱ경사에 대해서만 형사 책임을 묻고 “(경찰) 내·외부의 부정한 청탁이나 외압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전 차관과 사건 관련자들의 통화내역 8천여건을 분석해보니 청탁이나 외압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전 차관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이 전 차관이 ㄱ경사와 경찰서 출석 관련 통화를 한 것 외에 전·현직 경찰관과 통화한 내역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 전 차관과 사건 처리 시점에 통화했던 상대방의 지위를 고려해 청와대·법무부 관계자를 포함해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는 57명도 선별조사 했지만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울청 관계자는 “이 전 차관의 통화 상대방들이 서초서장이나 과장 등 담당자에게 통화한 흔적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서초서장과 형사과장, 팀장 등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통화목록이나 문자메시지 등 일부 데이터가 삭제된 정황이 나왔지만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실무자만 수사 실책의 책임을 진 모양새라 경찰 ‘셀프 조사’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외압과 청탁이 없었던 가운데 수사관 한 명의 잘못으로 사건이 종결됐고, 수사를 총괄하는 팀·과장의 직무유기를 입증할 근거는 없다고 본 것이다. 서초서 생활안전과에서 이 전 차관의 신분을 보고받은 서초서장은 그 뒤 ‘증거관계를 명확히 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지만 진상조사단은 혐의점이 없다고 보아 서초서장을 입건하지 않았다. 경찰은 형사과장과 팀장에 대해서만 “혐의가 명확하지 않아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찰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해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전 차관 사건에 서울청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지만 서울청 수사부는 사건이 종결된 시점까지 서초서에서 이 전 차관 사건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경찰 범죄수사규칙상 변호사 관련 사건은 서울청 보고 대상인데 경찰 설명대로라면 서초서가 이를 보고하지 않은 셈이다. 서울청 관계자는 “서초서는 관내 변호사 사건이 워낙 많아 따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청은 서초서가 보고의무를 위반하고, 이 전 차관을 평범한 변호사로 알았다고 보고한 점, ㄱ 경사의 부적절한 사건처리에 대한 지휘·감독 소홀 책임을 묻기 위해 서초서장과 형사과장, 팀장에 대해서는 감찰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편 이 전 차관은 폭행 사건 피해자인 택시기사에게 합의금을 건네고 블랙박스 영상을 지워달라고 요청해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송치됐다. 그에 따라 택시기사는 증거인멸 혐의가 인정돼 함께 송치하기로 했다. 이 전 차관은 지난 3일 입장문을 내고 “합의금은 블랙박스 영상 삭제의 대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날 일선 경찰서에서 접수해 조사하는 주요 내사 사건도 시도경찰청을 거쳐 국가수사본부로 보고하고 지휘를 받도록 하겠다는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경찰은 ‘내사’의 개념을 대폭 축소하고 ‘불입건’, ‘내사종결’ 사건에 대해서도 종결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했다.

이 전 차관은 폭행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도 따로 받고 있다. 지난 3일 입장문을 낸 이 전 차관은 “술에 만취해 상황을 착각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폭행한 사실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폭행 혐의를 인정해 특가법 위반으로 검찰 기소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청도 이 전 차관 사건을 전면 조사하면서 특가법 위반 혐의를 판단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검찰 수사에 적극 공조하겠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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