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둘째 딸이 저녁 식사자리에서 “요즘 산업재해 사고 기사가 많이 나온다. 아빠도 조심하라”고 당부한 다음 날 벌어졌다. 화물차 기사 장창우(52)씨는 “나도 뉴스를 보고 있어. 조심할게”라고 딸을 안심시켰지만, 지난달 26일 화장지 생산업체 쌍용씨앤비(C&B) 운송지에서 화물을 내리다 쏟아진 300㎏ 파지 더미에 깔려 끝내 숨졌다.
2일 오후 서울 동작구 쌍용씨앤비 본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의 기자회견에 참여한 장씨의 둘째 딸 장아무개(21)씨는 사고 전날 아버지와의 대화를 전하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준비해온 회견문을 다 읽지 못했다. 장씨의 사고를 목격한 동료 화물차 기사도 마이크를 잡았지만 “하지 말아야 될…일을 해서 그런 사고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뒤 발언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화물연대는 사고 뒤 현장을 보존해야 하며, 사고 사후 조처 책임이 쌍용씨앤비 쪽에 있다고 명시한 쌍용씨앤비 내부 매뉴얼을 공개했다. 쌍용씨앤비가 지난 26일 장씨의 사고 뒤 28분 만에 작업을 재개하고 현장을 치운 것은 산업안전보건법 26조뿐만 아니라, 내부 매뉴얼까지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화물연대가 확보한 쌍용씨앤비 내부 ‘사고 보고 및 사고자 관리(2017년 5월27일 작성)’ 매뉴얼을 보면, ‘사고 및 부상자 처리순서’로 “사고원인 조사를 위하여 현장을 보존하되, 보존은 관련 기관과 상황 협의 후 이에 따른다”라고 돼 있다. 쌍용씨앤비는 화물연대 쪽에 “경찰에게 물은 뒤 현장을 정리했다”고 답변을 하기도 했는데, 정작 경찰은 “현장 정리를 하라고 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명백하게 자신들이 작성한 매뉴얼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사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살인자가 현장 증거 인멸하듯 그런 행태를 쌍용씨앤비가 벌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쌍용씨앤비(C&B) 내부 ‘사고 보고 및 사고자 관리’ 매뉴얼에 쌍용씨앤비 조치원 공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책임이 쌍용씨앤비에 있음이 명시돼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제공
쌍용씨앤비 쪽은 “현장 정리를 지시한 적이 없고, 하청업체가 알아서 판단하고 정리한 것”이라고도 설명했는데, 매뉴얼에는 모든 사고의 사후처리에 대한 책임이 쌍용씨앤비에 있다고도 명시됐다. 이 매뉴얼의 적용을 받는 사고·사고자는 쌍용씨앤비 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공장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관한 사고 보고서 및 사고자”이며, “조치원 공장 내 전구역/조치원 공장 전사원 및 외부작업자(방문자 포함)”라고 규정돼 있다.
사고는 예견된 산업재해였다. 둘째 딸 장씨의 말을 들어보면, 장씨는 항상 가족들에게도 “경사로에서 폐지 하차작업을 하는 게 위험해서 쌍용씨앤비 쪽에 안전바 등 안전장치를 설치해달라고 했지만 바뀌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화물연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쌍용씨앤비는 1년가량 전부터 파지 부스러기가 날린다는 이유로 화물차 기사에게 직접 작업장 경사로에 내려가 차량 컨테이너 문을 열고 하차작업을 할 것을 지시해왔다. 화물차 기사들이 위험성을 지적했지만, 지시는 계속됐다.
2일 오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는 서울 동작구 쌍용씨앤비 본사 앞에서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책임회피 쌍용씨앤비(C&B)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채윤태 기자
쌍용씨앤비는 유가족에게 아직 사과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둘째 딸 장씨는 아버지 장씨의 빈소가 충북 청주시 충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지만, 쌍용씨앤비 쪽에서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씨는 “쌍용씨앤비가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서 저희 아빠가 하루라도 빨리 편히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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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줄 알았지만…300㎏ 파지가 그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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