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첫아이를 낳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기 안산 단원구에 있는 한 산후조리원에서 <한겨레> 독자들에게 안부를 전해 왔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의 임신과 출산, 육아는 가족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임신과 출산 앞에 걱정이 먼저 앞서는 건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친정 근처로 이사할 고민 앞에서 막막한 것도 마찬가지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이 산후조리원에서 <한겨레>와 비대면 인터뷰를 위해 ‘로그인’해 왔다. 그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가족 도움 없이 국가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요.”
지난 17일 오후 노트북 화면을 통해 비대면 인터뷰로 만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건강해 보였다. 출산한 지 9일 된 그는 산후조리원 산모복을 입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인터뷰를 제안하면서도 아이를 갓 낳은 뒤라 ‘괜찮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용 의원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을 솔직히 전하겠다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는 서면과 화상으로 이뤄졌다.
“국회의원이 산후조리원 옷을 입은 모습을 공개하는 것도 흔치 않을 건데요, 직접 경험해보니 출산이란 게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한 일이더라고요.”
실제 역대 국회의원 가운데 임기 중 출산을 경험한 사례는 19대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 20대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에 이어 용혜인 의원까지 세차례에 불과하다. 용 의원은 특히 코로나19 한복판에서 출산을 하게 되어 어려움이 남달랐다.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입원할 때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해요. 제 경우는 그렇지 않았지만, 어떤 병원에선 산모들도 마스크를 쓰고 분만한다고 해요.”
용 의원은 현재 고향인 경기 안산 단원구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돌보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외부인 출입을 더 엄격히 통제하는 산후조리원 규정에 따라 남편도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면회가 가능하다. 매일 스케줄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이 많아 산후조리원 생활이 무척 ‘빡세다’면서도 그가 서면으로 먼저 보내온 인터뷰 답변서는 무려 다섯장이었다.
국회의원 당선 첫해인 지난해 용 의원은 1년 중 국회가 가장 바쁘다는 국정감사 기간에 임신을 확인했다. 임기 첫해 국회의원으로서 한창 일 욕심이 나던 때여서 기쁨과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임신을 확인했을 때 너무너무 기뻤지만 동시에 걱정이 됐어요. 임기 중에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며,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직 국회의원으로서는 드물게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유의미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는 일 때문에 임신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됐다. 그 역시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 즈음, 친정이 있는 경기 안산으로 이사했다. 이곳은 용 의원이 6살 때부터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살았던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사한 지 얼마되지 않아, 배 속의 아이는 임신 9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마침 아이를 낳은 병원과 연계된 산후조리원이 있어 그곳에서 몸조리도 할 수 있었다. 용 의원은 우리 사회가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만 하지, 출산과 관련된 대부분 과정을 개인과 가족들이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용 의원 부부도 결국 상의 끝에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육아를 위해 친정집 근처로 이사했다고 들었어요.
“일단 저와 남편이 기본적으로 육아를 하는데요, 엄마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사하게 됐습니다. 엄마는 옛날엔 ‘절대 나한테 손 벌릴 생각 하지 마라’ 하셨는데, 막상 아기가 생기고 나니 좋아하세요. 빨리 아기가 보고 싶다고도 하시고요. 물론 실제로는 얼마나 도와주실지 모르겠지만 (웃음) 그런 상황이에요.”
―국회의원도 친정 도움 없이 육아하기 힘든 세상이네요.
“친정어머니에게 육아를 부탁해야 해서 마음이 많이 무겁기도 합니다. 육아휴직을 하기로 한 남편한테 아이 양육을 오롯이 부담시키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들고요. 함께 사는 남편과 어떻게 가사와 육아를 분담할지 더 많은 고민을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용혜인 의원이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용혜인 의원실 제공
1990년생인 용 의원은 대학 4학년 때인 2014년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침묵시위 ‘가만히 있으라’를 제안하며 시민사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최저임금 1만원, 기본소득 도입’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던 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20년 1월 기본소득당의 창당 멤버가 됐다. 그해 21대 총선에서 범여권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5번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기본소득당에 복귀해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근로자’가 아니라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대한 권리를 법으로 보장받지 못한다. 용 의원은 현재 국회에서 회의가 열릴 때마다 불참이 불가피한 이유를 알리는 ‘청가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 승인받고 있다. 그는 “얼마 전 김부겸 총리의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때 국회 본회의가 열렸다. 청가서를 제출해 간신히 불출석을 면하게 됐다. 5월 말까지는 회의 때마다 청가서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의원이 아이 낳았다고 오래 쉬면 안 된다’는 식의 압박도 받으실 것 같아요.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끊임없이 결정해야 할 것이 늘어나는 국회에 있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워킹맘들을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제가 ‘슈퍼맘’처럼 되어 쉬는 기간 없이 국회에 돌아가는 것이 옳은지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실제 출산 이후 회복하는 기간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누구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제대로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두 가지 마음이 들어요. 오래 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지만, 국회의원조차도 제대로 된 출산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슈퍼맘을 강요하는 사회의 롤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지난 17일 용 의원은 다른 국회의원 61명과 함께 이른바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을 대표발의했다. 국회의원이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 자녀와 함께 국회 회의장에 출석할 수 있도록 현행 국회법을 개정하는 내용이다. 20대 국회에서 역시 현직으로 아이를 낳았던 신보라 전 의원이 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가 진행조차 되지 않은 채 회기가 종료됐다.
반면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등에서 의회 표결 등 중요한 업무에 출산한 여성 의원이 배제되지 않도록 아이와 함께 출석하는 것을 보장하고 있다. 2018년 태미 더크워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생후 10일 된 딸을 데리고 등원했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 상원은 생후 1년 미만 아기를 의원이 동반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규정을 바꿨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6년 국회 회의장 입장 규정을 바꿔 의원이 신생아를 동반할 수 있도록 했고, 유럽의회도 의원이 아이와 함께 회의장을 출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사회참여가 제한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세계 여러 의회에서 제도 개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18일 국회 대정부질문 중인 용혜인 의원. 공동취재사진
용 의원은 국회의원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휴직 동안 비난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발의를 통해 국회의원만이 아닌 국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녀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어지길 그는 바라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든 되지 않든, 몸이 좀 회복되면 국회의원으로서 일을 다시 시작할 것이지만, 그건 여전히 저의 남편과 부모님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용 의원은 임신, 출산 과정에서 겪는 많은 의료 조처들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란 사실을 알게 됐다. 유산방지제 주사(일명 돌주사), 출산 전후 검진, 산후조리 등이 현재 개인 부담이다. 많은 여성들이 임신 과정에서 입덧으로 고통받지만, 이를 경감시키는 약도 건강보험 비급여로 남아 있다.
“이번에 너무나 많은 의료 조처들이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많이 놀라기도 했죠. 곧 출산한 지 한달이 되는데, 이즈음부터 받게 되는 산후 검진에도 비급여 항목이 많더군요.”
출산 전에도 그는 병원에 갈 때마다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의 병원비를 지출해야 했다. “7회를 초과하는 초음파 검진, 여러 가지 태아 검진, 유산 방지를 위한 주사 등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항목이 수두룩했다”고 그는 전했다.
특히 임신 초기, 용 의원은 유산 징후로 새벽에 병원 응급실에 자주 가야 했다. 유산만큼은 피해보고자 유산방지제를 맞았다. 그러나 건강보험 혜택은 받지 못했다. 용 의원은 “임신 기간은 우리나라에서 임신부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 출산하는지 온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많은 산모들이 출산 후 2~4주가량 머무는 산후조리원도 고비용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0년말 기준 전국에 산후조리원이 501곳 있는데, 2주 이용 비용이 최소 90만원부터 최대 1000만원을 넘는 경우까지 천차만별이다. “민간 산후조리원은 워낙 비싸고, 시설마다 서비스 횟수가 다르거나 미끼 상품 등으로 추가 부담을 져야 하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조금만 시설이 좋으면 수백만원을 넘어 1000만원 이상 비용을 내야 하는 민간 산후조리원도 많고요.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값이 싼 공공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려면 배 속에서부터 줄 서기가 시작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률이 높습니다.”
용 의원은 산후조리 과정이 단지 개인의 건강 돌봄만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나마 경기, 전남, 경북 등을 중심으로 공공 산후조리원 설립을 늘리고 있다. 출산과 산후조리를 개인의 건강관리 차원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공평하게 받아야 할 공공서비스에 포함시키자는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며 그는 말했다. “‘산후조리’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 생각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도 고민해야 합니다.”
용혜인 의원이 화상으로 기자와 인터뷰하는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기본소득당 의원인 그는 이번 출산 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꼈다고 했다. 임금노동을 통해서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회에선 돌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지급되고, 노동시간이 단축되며, 충분한 휴가가 보장되는 방식으로 일자리 형태가 달라져야 모든 사람이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출산 과정에서 워킹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기본소득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히 느꼈어요. 기본소득은 충분히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모두가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입니다.”
용 의원은 앞으로 기본소득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제정하는 게 국회에서 자신이 해야 할 임무라고 여긴다. 그는 지난 3월 온실가스 배출량 1t당 탄소세 8만원을 부과해 전 국민에게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탄소세’ 법안을 발의했고, 지난해 12월 국무총리 소속 기본소득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자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출산 이후 복귀하면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 재원을 마련할 모델의 법제화를 추진할 생각이다. “기본소득당원으로서, 기본소득을 실현해내는 게 저의 첫번째 꿈”이라고 그는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