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리얼리티 예능 조작 사건
‘함진 부부 조작 논란’ 끝 시즌 종료
TV조선 “프라이버시 확인 한계”
함소원 “알면서도 촬영 임한 잘못”
시청자 피해 책임 누구에게 있나
리얼리티 예능 조작 사건
‘함진 부부 조작 논란’ 끝 시즌 종료
TV조선 “프라이버시 확인 한계”
함소원 “알면서도 촬영 임한 잘못”
시청자 피해 책임 누구에게 있나

<아내의 맛> 함소원 편. <티브이조선>은 ‘조작된 리얼리티 예능’이란 비판에 대해 “사적 영역을 100%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책임을 미뤘다. 방송 화면 갈무리

방송화면 갈무리
비판에는 ‘시청자가 원한다’ 핑계
‘책임 통감 시즌 종료’ 무색하게
같은 제작진의 예능 잇따라 시청자 속이는 불량 예능 ‘진행형’ 결국 리얼리티 예능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드라마’에 가깝다. 드라마나 콩트에서 고부갈등, 부부싸움이나 재벌 3세 캐릭터를 보는 일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실제 상황’이라는 설정을 선사해 몰입감을 높이는 것이 리얼리티 예능의 핵심이다. 그나마 이 장르의 위험성과 한계를 어느 정도 인지한 사람들은 자극의 강도를 높이는 대신 출연자들 사이의 관계 형성에 집중하거나, 귀촌·캠핑 등의 대안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아내의 맛〉 제작진은 다르다. 지난 3년간, 제작진은 함소원의 ‘실제 부부 생활’이라고 포장된 갈등과 ‘실제 재산’이라 포장된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것으로 자극을 한껏 올려 시청률을 추수해왔다. 서혜진 책임프로듀서가 만든 또 다른 티브이조선 리얼리티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의 캐치프레이즈가 ‘리얼타임 드라마’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게 ‘리얼’이 아니라, 실제로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듯한 ‘리얼타임 드라마’라는 걸 딱히 숨길 생각이 없는 것이다. 물론 시청자들도 안다. 리얼리티 예능을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보는 사람들 또한 이미 장르 특성상 어느 정도 연출이 들어갔을 것을 짐작하고 있다. 그렇기에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회의를 극복할 만큼 더 과격한 갈등과 더 과격한 부를 전시한다. 애가 열이 39도가 넘는 고열 상태인데 그걸 민간요법으로 자연치유하자고 싸운다고? 집을 한바퀴 둘러보고 난 다음에 그 자리에서 일시불로 집을 산다고? 다들 제정신이야? 눈앞에 너무 큰 자극이 던져지면, 그 스트레스를 처리하느라 냉정하게 의심하고 사실관계를 따지려는 이성은 잠시 뒤로 물러나게 되어 있다. 마치 과격한 서사 전개로 시청자를 질리게 만들어, 완성도를 따지는 일을 잠시 미뤄두게 만드는 막장드라마처럼 말이다. 심지어 이쪽은 ‘실제 사생활’을 표방하고 있으니 자극의 정도가 막장드라마에 비할 바 아니다. 서혜진 프로듀서는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청자는 다 옳다. 그분들이 진리다. 시청률 2~3% 찍고 ‘난 우아한 프로를 만들었어’ 자부하는 사람이 제일 이해가 안 된다. ‘당신이 못 만들어서 그런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미스트롯 서혜진 PD “시청자가 다 옳다, 이 치열한 지옥이 즐겁다”. 2021년 3월20일.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사람들이 불티나게 찾으면 다 옳은 것이라는 논리 구조라면, 세상에 마약상만큼 올곧은 사람도 없겠다. 제작진은 “방송 프로그램의 가장 큰 덕목인 신뢰를 훼손한 점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시즌 종료를 선언했지만, 폐지도 아니고 ‘시즌 종료’가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제작진이 자숙의 기간을 가질 것도 아니고, 어차피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회전문 돌듯 돌아오는데 그게 어디를 봐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것인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시리즈를 흥행시키고 스핀오프로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까지 안착시킨 서혜진 프로듀서 사단에게 티브이조선이 책임을 물을 리가 없다. 〈미스트롯2〉 결승 진출자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예능 〈내 딸 하자〉가 방영 중이고, 제목에서부터 그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리얼리티 예능 〈연애의 맛〉 시즌4 또한 6월부터 방영될 예정이다. 해로운 물건을 만들어 유통했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수상쩍은 물건을 유통 중이다. 왜 떠난 자리도 피곤한가 했는데, 피곤한 사람이 아직 안 떠나고 있다.
▶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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