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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떼돈? 땅 산 업자들과 분양받는 서울사람들이 벌어”

등록 2021-03-16 04:59수정 2021-03-16 08:55

[고양 창릉새도시 예정지 가보니]
주민들 곳곳에 ◯◯대책위 펼침막
“수용지구는 시세만큼 보상 못받아 LH 직원 인근 수혜지 땅 샀을 것”
“땅값 50~60% 뛴 새도시 주변지역도 조사하라”
“LH 못믿어 지장물 조사 저지” 별러
15일 오후 경기 고양창릉지구 인근 한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 펼침막이 설치돼 있다. 고양/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5일 오후 경기 고양창릉지구 인근 한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 펼침막이 설치돼 있다. 고양/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봉산터널을 지나면 시야가 탁 틘 고양 창릉새도시 예정지가 나온다. 6호선 새절역에서 차로 5~10분 거리다. 4차선 찻길 양쪽으로 논밭에 비닐하우스와 함께 ○○대책위 명의의 펼침막들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펼침막에는 당국을 규탄하는 내용 또는 ‘두고 보자 도둑놈들’ 같은 험악한 문구들이 쓰여있었다. 창릉지구엔 조금씩 다른 이름의 이런 대책위가 10여개가 만들어져 활동 중이다.

지난 10일 컨테이너에 임시 설치된 한 ㄱ대책위 사무실에 들어갔다. 테이블 하나를 놓고 주민 6명이 모여 있었는데, ㄱ대책위 위원장이 계속 흘러내린 마스크를 고쳐 쓰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엘에이치(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 투기의혹 나오고 나서 제일 억울한 게 뭐냐면요. 사람들이 새도시에 땅 있으면 떼돈 번다고 본다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떼돈을 법니까? 주변 시세만큼도 못받습니다. 떼돈은 새도시 들어서고 나서 땅 살 수 있는 업자들하고 아파트 분양받는 서울사람들이 버는 거 아닙니까.”

도면유출 파동 7개월 만에 3기 새도시 지정

창릉새도시는 서울에 인접해 있어 일찌감치 투기꾼들 손을 많이 탔다. 2018년 엘에이치 직원이 ‘창릉지구 내부검토 개발도면’을 유출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으로 2018년10월 정부는 “창릉지구를 새도시 대상에 제외한다”고 밝혔지만, 이듬해 5월 유출됐던 도면과 절반 이상 겹치는 지구가 3기 새도시로 지정했다. “일부 중첩되지만 시장교란 행위는 적다”(김현미 당시 국토부장관)는 설명이었지만, 주민들은 “투기세력에 로또번호를 불러줬다”고 반발했다.

용두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도면유출 때문에 백지화됐을 때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지정이 안될 거라고 보고 땅 팔아치운 사람들 많았다”며 “이제 와서 보면 (지정된다는) 내부정보를 알고 있는 엘에이치 직원들하고 투기꾼들만 재미를 본 것 같다”고 의심했다.

15일 오후 경기 고양창릉지구 인근 한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 펼침막이 설치돼 있다. 고양/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5일 오후 경기 고양창릉지구 인근 한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 펼침막이 설치돼 있다. 고양/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정지 주변 땅 최근 6개월 50∼60% 급등

지난 5일 엘에이치는 “창릉새도시 전체 토지소유자를 확인한 결과 엘에이치 직원은 없다”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그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11일 정부합동조사단이 인근 지역까지 대상에 포함해 조사(1차)한 결과, 엘에이치 직원 2명이 창릉새도시 관련 땅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ㄴ대책위 관계자는 “엘에이치 직원들이 땅을 샀다면, 얼마 쳐줄지 알 수도 없는 수용예정지구보다는 그 바로 옆 땅을 샀을 것”이라며 “새도시 혜택도 그대로 받을 수 있고, 땅도 시세대로 팔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낫다. 조사하려면 주변 수혜지역까지 다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수용예정지인 화전동의 토지거래 건수는 29건이었는데, 인접해 있는 현천동의 거래 건수는 47건이었다. 이 지역 부동산들에 물어보니, 수용예정 지구와 달리 주변 지역 시세만 최근 6개월 동안만 50∼60% 급등했다고 한다.

불신·비토 대상 정부·LH “지장물 조사 거부”

일부 대책위들은 조만간 진행될 예정인 지장물(토지에 딸린 건물이나 농작물 등) 조사부터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장물 조사는 토지보상 절차의 첫단계인지라 지장물 조사에 차질이 빚어지면 전체적인 새도시 개발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 ㄷ대책위 관계자는 “엘에이치가 자기 직원들 관련된 땅 보상을 더 해주려고, 원주민들 땅은 적게 보상할 수 있다. 엘에이치를 어떻게 믿냐”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은 아무개네는 자식이 엘에이치에 다녀 몇년 전 매입한 땅이 이중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해줬다. 하지만, 번지수를 확인해본 결과 2004년에 거래가 이뤄진 땅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감정평가가 ‘쇼’에 불과할 것이라고 의심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진행한 표본감정에서 보상금이 다 결정됐고, 올여름께 진행될 예정인 본 감정은 “주민들 설득하기 위한 전시행정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대형 평가법인 소속 한 감정평가사는 “보상액 등 예산 책정을 위해 진행하는 표본조사는 압력을 안받기에 더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게 평가사들 중론인데, 주민들 (정부나 엘에이치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본 감정평가는 시행사(엘에이치), 관할 시·도지사(경기도지사), 토지소유주가 각각 추천한 3명의 감정평가사가 진행한다.

15일 오후 경기 고양창릉지구 인근 한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 `강제수용 결사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이 세워져 있다. 고양/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5일 오후 경기 고양창릉지구 인근 한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 `강제수용 결사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이 세워져 있다. 고양/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내부도 엇갈리는 이해관계…‘보상’에 초점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엘에이치와 그 직원들에 대한 과도한 불신과 억측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놨다. 엘에이치 쪽에서 평가 업무를 해 본 한 감정평가사는 “몇십년 된 아름드리나무라면 모를까, 용버들 묘목을 심는다고 해서 엄청난 보상을 받는 건 아니다. 땅값보다 보상금이 큰 것도 아니다. 토지평가를 나가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수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엘에이치 직원들이 수용예정지에 땅을 샀다고 해서 처음엔 ‘왜 샀지’ 했다. 원래 수용지는 예를 들어 시세가 100원짜리 땅이라면 110∼120원 정도로는 보상하지만 300원, 500원으로 보상하진 않는다. 토지보상법의 취지가 ‘개발에 따른 이익은 빼고 보상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변 지역에 투자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1000㎡이상 토지를 보유하면 아파트를 특별공급 받을 수 있다고 하면 그건 다른 문제다. 내부 보상제도(지난해 5월)가 바뀐 것을 미리 알고 땅투기를 했을 순 있었을 것이다. 감평사들도 잘 몰랐던 정보”라고 말했다.

창릉새도시의 경우 오래 전부터 개발이 예상됐던 곳이라 외지인들이 20여년 전부터 땅을 사들이는 바람에 주인들을 원주민·외지인으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엘에이치 타도’에 대해선 한목소리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한쪽에선 “신도시 계획 철회”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이번 일로 개발 계획이 철회돼선 안 된다”는 말도 나온다.

화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님들 계속 찾아와서 엘에이치 직원이나 지역 정치인 투기했다는 소문이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별로 할 얘기도 없고요. 우리한테는 보상을 어떻게 받는지가 중요합니다.”

지난 10일 오후 3기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 고양 창릉지구에 설치된 한 주민 대책위 컨테이너 사무실 앞으로 한 주민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지장물 조사 결사반대’, ‘두고 보자 도둑놈들, 창릉지구 전면 취소하라’는 문구가 보인다. 김양진 기자
지난 10일 오후 3기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 고양 창릉지구에 설치된 한 주민 대책위 컨테이너 사무실 앞으로 한 주민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지장물 조사 결사반대’, ‘두고 보자 도둑놈들, 창릉지구 전면 취소하라’는 문구가 보인다. 김양진 기자

※ 부동산 투기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한겨레> 부동산 투기 취재팀은 LH 직원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서 시작된 한국 사회의 불공정한 재산 축적 문제에 대해 집중적인 취재와 보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고위 관료를 비롯한 공직자나 토지 개발 관련 공기업 임직원 등의 부적절한 부동산 투기에 대한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제보해주신 분의 철저한 신원 보장을 위해 제보는 아래 링크를 통해 받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의 소중한 제보가 더 공정한 사회를 위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제보: https://bit.ly/3bCGOUX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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