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국정원 4대강 사업반대 민간인 사찰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한 시민사회계·종교계·학계·언론계 등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 4대강국민소송단, 내놔라내파일시민행동(시민행동) 등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7쪽 분량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 8건을 공개하며 “(문건 작성자로 추정되는)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를 비롯해 당시 청와대 핵심 인사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앞서 녹색연합 등 5개 단체는 시민행동과 함께 국정원을 상대로 ‘이명박 정부 시기 4대강 사업반대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검찰에 제출한 정보’ 등을 정보공개청구했고, 최근 국정원이 문건 중 일부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에는 국정원이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회원 현황 및 동향, 활동계획, 비리의혹과 종교계·학계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 전방위적인 민간인 사찰 정황이 담겨 있다. 문건에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4대강을 반대하는 종교단체에는 ‘국고보조금을 축소하고 비리를 발굴해 비난 여론을 조성’, 교수들에게는 ‘국고 지원금 및 연구 영역에 대한 감사를 추진’ 등의 대응 전략도 포함돼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문건도 2건 나왔다. ‘4대강 사업 찬·반 단체 현황 및 관리방안’, ‘4대강 사업 주요 반대 인물 관리방안’이라는 이름으로 2009년 7월에 작성된 두 문건 상단에는 각각 ‘6.26 청와대(홍보기획관) 요청사항’, ‘7.8 청와대(홍보기획관) 요청사항’이라고 적시돼 있다. 해당 문건에는 ‘친분인사 등으로 간접 관리라인을 구축해 투쟁계획을 사전 파악하고 종북 좌파활동·국익 저해 사례를 공개해 국민적 거부감을 조성’, ‘단체간 갈등 및 주도권 다툼 등 취약점을 집중 공략해 반대활동을 무력화’ 등의 4대강 반대 단체·인사 대응 계획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박형준 후보는 ““불법사찰을 지시도, 관여한 적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4대강국민소송단에 참여한 김영희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박 후보는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일 때 국정원 보고를 받았지만 언론에 나와서는 자신은 국정원 사찰에 관여하지 않았고 지시·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는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해 오는 17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시민행동은 정보공개 청구로 국정원의 공작을 밝히고 사찰 피해 대상자들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곽노현 시민행동 상임대표는 “정치관여죄와 직권남용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라 2014년 3월까지의 (국정원) 불법 사찰·공작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국정원의 흑역사 청산에 필요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주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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