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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LH 직원들의 부정한 투기 이익, 환수 가능할까?

등록 2021-03-15 12:29수정 2021-03-15 14:30

공직자 투기 판례 살펴보니
대법 “일반에 공개되기 전까지 비밀”로 판단
지가상승 유발하는 개발정보도 업무상 비밀
관건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정보인지 여부
9일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 연합뉴스
9일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 연합뉴스

“부정한 투기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새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내린 지시다. 사의를 표명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공직자 회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얻는 정보도 업무상 비밀로 간주한다는 판례가 있다”며 “판례를 따르면 회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엘에이치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판례에 따라 부당이익을 환수할 수 있을 거란 게 변 장관의 얘기다.

15일 부패방지법상 내부 정보를 활용한 공직자 투기 판례 등을 살펴보니, 법원은 ‘업무상 비밀’을 폭넓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관건은 업무상 비밀이 ‘업무처리 중’에 얻은 정보인지 여부였다. 업무 관련성이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처벌 및 환수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국토발전전시관에 마련된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국토발전전시관에 마련된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새도시 지정 정보’는 비밀이 맞나

판례는 부패방지법에서 규정한 업무상 비밀에 대해 “공적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까지는 모두 비밀”이라고 봤다. 외부에 일부 알려진 정보더라도 구체적인 계획안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비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006년 11월 대법원은 경기도 과천시 건설과 공무원 ㄱ씨가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도로개설예정지 인근 맹지를 매입해 12억원의 시세차익을 본 사건에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도로개설계획은 그것이 미리 알려질 경우 지가상승을 유발하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다”며 “도로개설계획 및 구체적 노선 계획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적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까지는 모두 부패방지법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법률상 비밀이라고 못 박은 정보가 아니어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개발계획은 업무상 비밀이라는 얘기다.

ㄱ씨는 “도로개설계획은 주민 숙원사업으로 추진된 것으로 주민들에게 공개된 사실이었다”며 비밀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원심 재판부와 대법원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심 재판부는 “주민들의 개설건의가 있었고 주민면담에 의해 도로개설계획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사실이나, 일반인이 대강의 노선이 아닌 구체적인 노선 계획안을 알 수는 없었다”며 ㄱ씨의 주장을 기각하고 징역 1년6개월에 추징금 7억3천여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판례는 개발계획이 구체적으로 공공에 알려졌다면 비밀이 아니라고 봤다. 2009년 7월 대법원은 공무원이 업무상 비밀을 활용해 동두천시 도로부지에 투기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도로개설사업이 비밀은 맞지만, 동두천시 시보에 도로개설사업에 대한 예산 배정 및 공사가 실시될 것이란 사실이 공개된 경우에는 “(지자체가) 위 정보를 비밀로 보유할 의사가 없음을 공적으로 표시한 것”이라며 비밀성이 상실된다고 봤다. 이번 엘에이치 사건에서도 개발계획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공공에 알려졌느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광명·시흥 지구 일대. <한겨레> 자료사진
광명·시흥 지구 일대. <한겨레> 자료사진

업무 처리 중 새도시 정보를 습득했나

업무상 비밀을 폭넓게 해석하더라도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으로 공직자를 처벌하려면 업무 관련성을 따져봐야 한다. 부패방지법 제7조의2는 공직자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물을 취득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9년 3월 대법원은 “공직자 또는 제3자가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하였는지 여부는 공직자가 부동산을 취득할 무렵에 담당한 업무, 부동산을 취득하게 된 동기 및 경위, 공직자와 부동산을 취득한 자와의 관계, 취득한 부동산과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의 관련성,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한 자들의 자금 마련 경위 및 이 사건 부동산 취득 후에 발생한 시세의 상승 정도 등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시했다.

다만 법원이 업무 관련성을 인정한 투기 사례들은 피고인이 해당 업무와 밀접한 연관을 가졌던 편이다. 현재 투기 의혹을 받는 엘에이치 직원들은 새도시 지정 업무를 담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업무 과정에서 새도시 지정 정보를 얼마나 알 수 있었는지를 밝히는 일이 수사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12억원의 시세차익을 본 과천시 건설과 공무원 ㄱ씨는 “다른 사람에게 듣고 도로개설 계획을 안 것이지 업무처리 중 비밀을 안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원심 재판부 및 대법원은 “도로개설 업무는 건설과 도로계 업무로 건설과 일상 업무회의에서 보고됐다”며 건설과에 있는 ㄱ씨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손혜원 전 열린민주당 의원의 부동산 차명매입 의혹도 대표적이다. 목포시 ‘도시 재생사업 계획’ 정보를 미리 습득해 차명 투자한 혐의로 지난해 8월 1심에서 손 전 의원이 실형을 선고받은 이유도 국회의원으로서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됐기 때문이다. 손 전 의원이 목포시장과 간담회를 갖고 도시재생사업 설명을 들었다는 사정 등을 종합하면, 손 전 의원이 도시 재생사업 계획 자료를 미리 확보한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업무처리 중”에 얻은 정보라는 게 서울남부지법의 판단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수할 수 있을까…소급입법 논의도

만약 새도시 정보가 업무상 비밀에 해당하고 업무 관련성도 입증할 수 있다면, 부패방지법 제86조에 따라 엘에이치 투기 혐의 직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 및 투기 이익 몰수·추징이 가능할 수 있다. 대법원은 공직자가 업무상 비밀로 재물을 취득한 범죄가 성립하는 시기는 ‘물건을 매수한 때’이지, 시세 상승 뒤 전매차익을 얻어 이익을 실현했을 때 범죄가 성립하는 건 아니라고 봤다. 손 전 의원도 목포 부동산 차명 매입에 대해 “문화재 보호 목적”이라며 “이익 실현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몰수당했다.

다만 엘에이치 사건의 경우, 업무 관련성 여부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소급입법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업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이득을 취했을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업무 관련성을 밝힐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부진정 소급입법(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소급적용하는 입법)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부동산 투기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한겨레> 부동산 투기 취재팀은 LH 직원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서 시작된 한국 사회의 불공정한 재산 축적 문제에 대해 집중적인 취재와 보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고위 관료를 비롯한 공직자나 토지 개발 관련 공기업 임직원 등의 부적절한 부동산 투기에 대한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제보해주신 분의 철저한 신원 보장을 위해 제보는 아래 링크를 통해 받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의 소중한 제보가 더 공정한 사회를 위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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