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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예술가·주민 ‘신뢰’ 덕분에 도시재생 이끌 ‘조합’ 꾸렸어요”

등록 2021-02-24 21:23수정 2021-02-25 02:44

[짬] 전주 선미촌 다큐사진작가 장근범씨

전주 노송동 선미촌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 장근범 대표. 전주시의 선미촌 문화재생사업 초기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참여해 예술인들이 공동운영하는 ‘물결서사’ 서점지기와 인디사업단 단장 등을 맡아왔다. 박임근 기자
전주 노송동 선미촌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 장근범 대표. 전주시의 선미촌 문화재생사업 초기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참여해 예술인들이 공동운영하는 ‘물결서사’ 서점지기와 인디사업단 단장 등을 맡아왔다. 박임근 기자

“점차적으로 바꾸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바로 효과가 나오기를 원하는 데, 눈에 보일만큼 즉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전체를 헐고 새로 건물을 짓는 전면 개발방식으로 진행하면 누군가는 떠나고 밀려납니다. 저희는 그런 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천천히 진행하니까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결국 느린 방식으로 주민과 신뢰를 쌓았습니다.”

도시재생사업을 민간주도로 추진하는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 장근범(41) 대표의 고백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그는 최근 국토교통부로부터 전주지역 성매매업소 집결지인 선미촌의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을 이끌어갈 조합 설립을 인가받았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나는 공동체 공간을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 18일 전주 서노송예술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 설립 대표
“성매매 집결지를 문화예술공간으로”
전면개발 대신 ‘느린 방식’ 의견수렴

개발이익 노린 자본으로부터 ‘독립’
행정지원센터 간섭·의존 없이 ‘자율’
“민간주도형 도시재생 전국 본보기로”

일반 협동조합과 어떤 차이점인지 궁금해, 먼저 조합의 이름부터 물었다. 장 대표는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의 ‘인디’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고, 현장지원센터 없이 자율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독립성’을 뜻한다. 여기에다 ‘~인데’라는 뜻도 들어 있다. ‘인디’는 ‘∼인데’의 전라도 사투리다.

마을관리 협동조합은 일반 협동조합보다 공익성을 한층 강화한 사회적 조합이다. 도시재생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주민 주도로 재생지역을 유지·관리하는 비영리법인이다. ‘전주지역 1호’인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으로, 주민과 예술가로 이뤄져 보기 드문 사례다. 대부분의 도시재생사업이 민과 관의 중간 사이에서 활동가들이 지원하는 형태의 재생센터 중심으로 추진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장근범(맨왼쪽) 대표와 조윤식(왼쪽 둘째) 노송천사마을주민협의회 회장 등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박임근 기자
장근범(맨왼쪽) 대표와 조윤식(왼쪽 둘째) 노송천사마을주민협의회 회장 등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박임근 기자

장 대표는 새달 열릴 총회에서 주민과 예술인 등 회원 30~40명으로 조합을 꾸릴 예정이라고 했다. “저희 예술인들이 주민들의 마음을 열도록 한 계기가 사업설명회입니다. 한 주민협의회장이 ‘해당 사업이 끝나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약속과 달리 떠났는데 뜨내기가 아니라 함께 계속 간다면 친구로서 끝까지 응원할 것’이라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 상생을 위해 연대하고 있습니다.”

전주시는 2014년부터 성매매집결지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는 문화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전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점진 개발방식이다. 그동안 시는 이 지역의 폐·공가와 성매매업소를 사들여 물결서사(예술책방), 시티가든(마을정원), 노송늬우스박물관(마을사박물관), 주민협력소통공간 등을 조성했다.

장 대표는 조합을 통해 민관 협치로 성매매집결지를 비롯한 서노송동 일대의 점진개발을 해온 ‘선미촌 1.0 프로젝트’를 계승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선미촌 2.0프로젝트’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전주 노송동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의 활동 계획 설명도.
전주 노송동 ‘인디 마을관리협동조합’의 활동 계획 설명도.

조합은 오는 6월 유휴지 15곳을 텃밭으로 활용해 정원박람회를 열 계획이다. 텃밭에서 채소·꽃을 생산하고(1차), 이것으로 가공품을 만들고(2차), 이런 경험을 체험, 교육한다(3차)는 것이다. 앞서 2019년 도시농부 형태의 장터를 3회,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해에는 소규모로 2회 열었다. 이후 코로나 때문에 중단된 상태다. 성매매집결지에서 장터를 여는 탓에 ‘남의 장사 망칠 일 있느냐”는 성매매업소 주인들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영리도 추구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우선합니다. 그런데 멋있는 커피숍 등에만 관심 있는, 돈 있는 자본가들이 개발이익을 주민보다 먼저 챙깁니다. 결국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해 자본가에게만 헌납하면 너무 허무합니다. 그런 경제적 소외를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오래 살고 싶은 주민 등이 수혜를 입어야 합니다.”

마을관리협동조합의 준비는 1년가량 걸렸다. 책상에서만 기획하지 않고, 주민과 함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 서로 다투는 상황도 있었지만 즐겁게 가자며 다독였다. 이 지역이 주차난이 심한데 앞으로 주차장 운영 등 일자리·수익 창출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장 대표는 “이곳의 도시재생 최종 목적은 모든 지자체가 꿈꾸는 민간주도형 자립 모델”이라며 “민간주도형으로 추진했는데도 더 잘 사는 마을이 있다는 전국 모범사례를 꼭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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