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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누리꾼 “스크린쿼터는 뭘 지키나?” 공방

등록 2006-01-27 16:48

한미FTA 필요성 맞물려 ‘한국영화 경쟁력’ 두고 의견 갈려
“내 몸이 반쪽이 난 기분이다. 참혹한 심정이다.”(영화배우 안성기)

올 7월부터 현행 146일의 스크린쿼터를 73일로 축소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영화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지키기 영화인 대책위(공동 집행위원장 안성기)’는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스크린쿼터 축소는 한류의 첨병인 한국 영화의 기반을 해치는 일”이라며 “미국의 오만불손한 통상압력에 굴복한 반문화적인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스크린쿼터는 외국 영화에 맞서 국산영화를 보호 육성하기 위해 1966년부터 도입된 ‘국산영화 의무상영 제도’다. 대책위는 새달 1일부터 8일까지 단식과 철야투쟁을 펼치며 대통령 면담과 대국민 토론회 개최, 경제부총리·외교·문화관광부 장관 등의 퇴진을 요구하기로 했다.

◇ 정부, 한미자유무역협정 매듭짓기 위해…영화발전기금 4천억 지원할 것

정부가 26일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전격 발표한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유리한 조건에서 매듭짓겠다는 경제적 논리에서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할 경우 잃는 것보다 얻는 많다는 경제계 주장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실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로 양국 교역 규모가 40억달러 증가하고 국내 제조업의 고용인원이 약 4만명이 늘어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자유무역협상의 선결조건으로 현재 1년의 40%선인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완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할 것을 요구해 왔다.

문화관광부는 27일 스크린쿼터 축소 대책으로 5년간 4천억원 규모의 한국영화발전기금 지원과 예술영화 전용관 100개관으로 확대 등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영화계는 냉담하다. 오히려 영화상영관 입장료에 5% 부가기금을 통해 2천억원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에 대해 결국 국민에게 ‘특별소비세’를 걷는 기만책이라고 비난했다.

◇ 누리꾼, “스크린쿼터 축소 영향 적을 것…찬성”

누리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미디어다음>에서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63.6%가 ‘찬성, 축소해야’ 의견을 밝혔다. ‘반대, 아직 이르다’는 33.8%에 그쳤다. 영화산업에 미칠 타격에 대해 <네이버>가 누리꾼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타격 입을 것’이 25.75%에 그쳐 ‘현재와 별 차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71.88%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누리꾼들은 국내 영화산업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한국 영화가 입을 타격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고, 이 기회에 영화계 체질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이유는 헐리우드와 경쟁하기에 우리 영화산업과 자본의 기반이 탄탄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연평균 100여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한 뒤에는 10편 미만의 자국 영화가 제작되고 있을 따름이다. 캐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4년 스크린쿼터문화연대가 발표한 ‘스크린쿼터제의 경제적 효과와 한-미 투자협정’ 연구보고서는 우려를 뒷받침한다. 쿼터를 하루 축소할 경우 영화시장 규모는 약 160억원 감소하며 50일 축소하면 손실액이 5380억원에 이른다. 보고서대로라면, 2조6천억원(2003년)에 이르는 한국 영화산업 규모액의 5분의 1이 피해를 입는 셈이다.

‘잎사귀’는 “손익분기점을 넘는 영화가 50%도 채 안되는 것을 생각하면,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곧 영화 제작편수의 감소를 가져온다”라며 “다작일수록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오지만 제작편수가 줄면 그만큼 좋은 영화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 '점유율'이 아닌 손익분기점을 넘는 영화가 80% 이상 되었을 때, 스크린쿼터 축소 얘기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 “영화계 이기주의, 일부만을 위한 스크린쿼터?”

스크린쿼터 축소 찬성론자들은 쿼터 축소가 한국영화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 지나친 기우라고 본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국산영화 점유율이 60%에 근접하고 있고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 영화가 스크린쿼터 축소로 순식간에 위축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내시장을 잃는 대신에 우리나라 영화가 그동안 쌓아온 경쟁력을 바탕을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 아니냐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다음>의 ‘다시돌아온정기사’는 “질 좋고 재미있는 영화를 관객들이 찾는다는 것을 증명했는데도 왜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같은 구태적인 제도에 매달리는가”라며 “한국영화가 한국문화라는 이들의 논리는 맞지 않으며, 언제까지 ‘스크린쿼터가 폐지되면 한국영화 망한다’는 논리로 제밥그릇 지키기만 할 텐가”라고 반문했다.

‘메카미즈메’는 “스크린쿼터를 방패막으로 급속한 성장을 해왔지만, 거대한 제작자와 배급사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라며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그리고 소자본 투자 영화에게도 의무 상영일수를 부여하라”고 충고했다.

‘게르비’는 “문화국치는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반대시위 하면서 외제차 타고 수입명품 칭칭 감고 나와 외국자본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라며 “주연배우 몸값 10%만 떼서 스태프나 영화발전을 위해 투자할 생각이나 하라”고 비난했다.

◇ “스크린쿼터는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

<미디어다음>에는 자신을 이기적인 영화인이라고 밝힌 ‘feelgoodinc’의 글이 회자되고 있다.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글이다.

“지금의 영화계 귀족들은 스크린쿼터 없어지나 마나 어차피 잘먹고 잘 살 것이다. 극장주들이야 뭐가 걸리던 상관없고, 대형 배급사들은 그냥 외국 영화 들여와 팔면 된다. CJ가 반지의 제왕 배급해서 돈 번거 생각하면 되겠다. 잘 나가는 몇몇 감독들과 배우들은 그들의 재능을 사줄 외국자본 밑으로 들어가면 된다. 영화 못 찍는 스타들도 그냥 드라마 찍고 광고나 찍어대면 먹고 사는데 전혀 문제 될 것 없다. 그렇지만 스크린쿼터는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계가 스크린쿼터를 지켜내려면 기존의 방식대로 기자회견이나 하는 수준으로는 힘들어 보인다. 이왕 이렇게 시끄럽게 된 거, 우리 영화들의 발전을 위한 실질적 지원책, 인력양성을 위한 스텝 처우 문제, 시스템의 권력관계 문제, 독립영화들과 다양한 실험들의 제작과 상영을 위한 뒷받침 등 쌓여있던 모든 문제들을 다 까발리고 떠들어 보았으면 한다. 스크린쿼터의 축소 여부와 관계 없이 언젠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희망’은 “스크린쿼터가 문제가 아니라 핵심적으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등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orphe’도 “지금의 스크린쿼터는 제작사, 배급사 그리고 일부 스타와 감독에게만 부른 배를 더 늘려줄 뿐 정작 현장에서 뛰는 영화인들은 소모품 취급받고 있다”며 영화계의 체질개선을 촉구했다.

◇ 정지영 감독, “한국영화 성장은 영화인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긍지이자 이익”

이런 주장에 대해 정지영 감독(영화인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기독교방송> 라디오에서 “다른 사람들의 피해를 업고 자기 이득만 취하는 것을 이기주의지만, 한국영화의 성장 및 발전이 누구에게 피해를 줬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우리 국민들한텐 긍지를 심어줬고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로 뻗어나가는 긍지를 심어줬고 관객들은 재밌는 한국영화를 보게 됐고 영화인들은 그 덕분에 한국영화의 발전에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다”라며 한국영화가 살쪘다고 집단 이기주의냐고 반문했다.

정 감독은 “집단이기주의라는 규정 속에는 피해를 보는 또 다른 집단이 있게 마련”이라며 “스크린쿼터 축소로 이익을 보는 집단을 바로 세계 영화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계인데 어떻게 집단이기주의냐”고 주장했다. 윤제균 감독도 26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문화가 아시아권에서 역사적인 감정 때문에 위축되고 있는 점, 중국이 연간 스크린쿼터 66.6%로 새로운 영화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이번 축소 문제로 한국 영화가 인적물적 자원을 통해 쌓은 아시아 영화 시장의 강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최진욱 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스크린쿼터는 유지되어야 한다. 만약 축소나 폐지를 하더라도 근거가 무엇인지, 이로 인한 타격이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며 “지금까지 스크린쿼터 속에서 일부만 배부른 것은 사실이며, 이참에 스태프들의 고용문제나 영화산업 전반의 발전문제 등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산업노조는 2월2일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공식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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