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설 연휴를 일주일 남짓 남겨둔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청과물시장에는 ‘설 선물세트 주문 환영’이란 커다란 펼침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사과·배·귤 등 과일이 가지런히 담긴 상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곳에서 30년 장사를 했다는 이아무개(76)씨는 “지난해 설 명절에 비해 과일이 10분의 1도 팔리지 않았다. 과일값은 비싸고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이지 않는다는데 팔릴까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인 정아무개(62)씨도 “지난해 추석 때 어느 정도 장사가 됐기 때문에 물건은 많이 받아뒀는데 이번엔 팔리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설 연휴 기간까지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연장하면서 명절 대목을 기대했던 상인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귀성 자제’만 당부했던 지난해 추석과 달리 이번 설은 5인 이상 모임 적발 시 최대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도 높은 조처가 동반됐다는 점도 변수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연장의 영향력은 전통시장에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다. 친지와 가족들이 모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이 지갑을 선뜻 열지 않고 있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전아무개(61)씨는 “떡을 사 가는 손님들도 ‘이번 명절엔 자녀들이 오지 않는다’며 소량만 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난해 추석엔 교회나 노인정 등에서 단체 떡 주문이 많았는데 이번엔 아예 모이질 못하니 단체 주문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강정, 유과 등을 판매하는 김상범(58)씨도 “강정은 주로 명절에 식구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며 먹는데 5인 이상 모임이 안 돼 매출에 타격이 있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고향 방문을 고민하는 이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이아무개(32)씨는 “두달 전 아이가 태어나서 양가 부모님들이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데 고향을 방문하면 5인이 넘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며 “명절이 두번밖에 없는데 가족들 모임까지 제한하는 건 좀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아무개(26)씨는 “할머니가 건강이 악화돼 찾아뵙고 싶은데 모이는 게 맞는지 가족들도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며 “정부 지침상 가족의 임종 가능성이 있는 경우 모임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데 지금 상황이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가족 사이에 시차를 두고 고향을 방문해 동시간대 5인 모임을 피하려는 이들도 있다. 지난달 결혼한 직장인 홍아무개(30)씨는 “결혼 뒤 맞는 첫 명절이라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안 드릴 수 없을 것 같다”며 “다른 가족들과 시차를 두고 인사를 드릴 생각인데 차라리 과태료를 감수하고 모일지도 고민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아무개(36)씨는 “친정은 가족이 다 모이면 6명이라 언니 가족과 시차를 두고 친정에 들르기로 했다”고 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5인 이상 사적 모임은 금지하더라도 가족 간 만남은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소 많았다. 이날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할 때도 가족 간 만남은 “허용해야 한다”는 답변(56.1%)이,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41.0%)보다 많았다.
강재구 김지훈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