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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진보진영 성폭력 공론화 21년…경각심 생겼지만 사건은 반복

등록 2021-01-25 21:23수정 2021-01-27 16:26

2000년 가해자 16명 실명 공개
‘피해자 중심주의’ 논의 본격화
안희정·박원순 사건 거치고도
‘남성’ 젠더폭력 반복
“가해 은폐 ‘조직보위론’은 무너져”
2018년 초 열린 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캠페인의 상징인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18년 초 열린 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캠페인의 상징인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진보진영 내 성폭력 사건 공론화의 역사는 짧지 않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힘겨운 공론화, 짧은 반성의 시간이 반복됐다. 2017년부터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미투 운동’,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범죄’ 공론화는 성찰 없는 반성을 끝낼 결정적 분기점이 되는 듯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의 대표로서 책임을 다하겠다”(2018년 2월 ‘당직자 2차 가해’ 징계 당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반성과 다짐은, 그러나 3년 만에 발생한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빛이 바랬다. 여성학자들은 “진보적 대의를 앞세워 활동하는 남성이라고 하더라도 남성이라는 젠더권력의 우위가 유지되는 한 언제든지 이를 악용할 수 있다”고 했다.

진보진영 내 성폭력 문제가 처음으로 전면화한 것은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100인위)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2000년 7월 꾸려진 100인위는 노동운동, 시민단체, 학생운동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 가해자 16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의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피해자 중심주의’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진보진영 내 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2008년 전교조 조합원을 민주노총 간부가 성폭행하려 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이 사건의 은폐를 시도했고, 사건 발생 10년 만인 2018년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했다. 2020년 2월에는 녹색당 당직자가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당직자에게는 지난 22일 3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성폭력 공론화와 함께 진보진영 내 가부장적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여성학자 전희경씨는 2008년 펴낸 책 <오빠는 필요없다>에서 1990~2000년대 활동한 여성운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진보진영 내부의 가부장적 문화와 보수성을 폭로했다. 여성운동가들은 “컵 씻는 일들은 주로 여성들이” 했으며, “운동가로 살기 위해 여성임을 포기”했다는 경험을 털어놓았다.

조한진희 여성주의 활동가는 진보진영에서 반복되는 성폭력·성추행 사건을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불평등의 문제로 본다. “우리 사회가 성불평등한 사회이고, 운동사회도 여기서 특별한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 진보진영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는, 이른바 ‘조직보위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을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성폭력 사건이 밖으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했다면, 최근에는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면 대의는 물론 조직 자체가 무너진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한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가 목소리를 냈을 때 사회와 조직이 이를 어떻게 수신하는지, 그 방식이 진보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25일 정의당은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실을 공론화하며 “가해자는 무관용 원칙으로 당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위로 엄중하게 처리하겠다. 향후에 피해자 책임론, 가해자 동정론 같은 2차 피해 발생 시 그 누구라도 엄격하게 책임을 묻고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진보진영 역시 이런 대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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