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용산구의회 앞에 배달된 근조화환. 설혜영 구의원 제공
관내 재개발지역의 다가구주택을 사들여 부동산투기 의혹과 함께 이해충돌 논란을 일으킨 성장현 용산구청장 사건을(
용산구청장, 조합 인가 직후 20억 건물 매입…‘재개발 투기’ 의혹)국민권익위에서 다루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구의회의장이 성 구청장의 재산문제 등을 공론화시킨 정의당 소속 구의원을 고소해, 경찰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용산구와 용산구의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소란이 벌어지고 있을까.
“부동산 자금, 출판기념회 등으로 모은 돈?”
‘성장현 용산구청장 부동산투기규탄 시민행동(시민행동)’은 17일 성명을 내어 “공직자의 다주택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인데, 성 구청장의 주택구입 문제는 구청장 스스로 재개발과 관련된 조합설립 인가 권한과 주택의 분양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충돌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성 용산구청장을 18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밝혔다.
성 구청장은 2015년 7월 용산구 보광동 한남뉴타운 4구역의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다가구주택을 30대 두 아들과 공동명의로 19억9천만원(대출 5억8천만원 포함)에 사들였다. 서울시와 용산구가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조합설립을 인가(2015년 1월)한 직후다. 이 주택 시세는 그 이후 10억원 이상 뛴 것으로 나타났다. 성 구청장의 장남(39)과 처제(57)도 2018년 8월과 9월에 용산구 신창동 주택을 각각 9억2천만원, 8억원에 사들였다.
시민행동은 성 구청장의 주택구입 자금 출처에 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성 구청장은 다가구주택 구입 한해 전인 2014년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예금이 전년보다 3억3280만원 증가했다고 신고했는데, 그 이유로 ‘출판기념회 및 소득저축’이라고 적었다. 시민행동은 “공직을 이용해 2013∼14년 사이에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의 방법으로 수억원의 부동산 구입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의심되는 점도 큰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행동은 18일 오전 11시 용산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주민서명운동 등을 벌여나간다는 계획이다.
“구의장 사과를” 구의원 농성에 구의장은 “고소”
성 구청장의 부동산투기 의혹과 이해충돌 논란은 설혜영 구의원(정의당)의 문제제기로 공론화됐다. 그런데 설 의원은 곧 경찰 조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설 구의원은 지난달 8일 용산구에 성 구청장의 지난 10년 간 재산신고 자료를 제출해달라는 공문을 만들었다. 구 의원의 자료제출 요구는 구의회의장을 경유하는데, 김정재 용산구의회(국민의힘) 의장이 ‘손님이 찾아왔다’며 직인을 찍지 않고 미뤘다고 설 의원은 주장했다. 공문은 나흘 뒤에야 김 의장의 직인이 찍혀 구청에 제출됐다. 설 의원은 “감시·견제해야 할 구청장을 구의회 의장이 비호하고 있다”며 구의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0일 김 의장은 공문제출 지연과 관련해 설 구의원에게 사과하기로 하고 사과문 초안까지 마련해 해결되는 듯했다. 설 의원이 지난달 21일 본회의에서 밝힌 김 의장이 약속했던 사과문은 아래와 같다.
“어제 의회에서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의 진행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설혜영 의원의 발언을 제약하게 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의원의 발언권을 존중하는 의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설혜영 의원의 서류제출요구에 본의 아니게 의정활동의 제약으로 느끼게 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의원의 자료제출요구 권한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은 저의 의정활동의 철학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이번 설혜영 의원의 서류제출 요구 과정에서 의회 사무국장이 서류제출 요구 결재를 누락시키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 발생했습니다. 의회사무국을 책임지고 있는 의장으로서 이러한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사과드리며, 이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김 의장은 지난 9일 “이미 공개된 재산신고 내역을 굳이 서류제출로 요구해야 하는지 더 검토하라고 한 것을 설 구의원이 에스엔에스(SNS)에 ‘의장이 서류제출 요구 결재를 거부한다’고 표현했다”며 설 구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 3명, 민주당 소속 구의원 5명이 ‘김 의장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증언한 확인서가 첨부됐다고 한다. 김 의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결재를 안 한 것이 아닌데도 설 의원이 에스앤에스, 수백명이 있는 단톡방, 언론 등에 (내가 구청에 요구하는 서류결재를 거부했다고) 알려 명예가 훼손됐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지난달 21일 구의회 본회의 때 신상발언을 통해 “설 의원의 의정활동을 방해할 생각없었다. 의장 직인, 문서 하나나 결재 때마다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이미 공개된 재산신고 내역을 굳이 서류제출로 요구해야 하는지 ’더 검토하라’고 한 것을 설 의원이 에스엔에스에 ’의장이 서류제출요구 결재를 거부한다’고 표현했다”며 설 의원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구청장 비호’ 주장과 관련해서 김 의장은 <한겨레>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그런 사실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김 의장의 고소장에 사실 확인을 한 윤성국 구의원도 “비호라고 하면 구청장이 뭔가 잘못한 게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다”며 “설 의원이 자기 정치를 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 구청장 재산 관련 문제제기에 일부 구의회 의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27일 제260차 용산구의회 본회의에서는 설 구의원이 ‘신상 발언’에서 성장현 구청장의 재산 문제를 꺼내자 장내에 소란이 이는 등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녹취록에 나타난 당시 의원 간에 주고받은 말들이다.
설혜영 의원(정의당 이하 설) : …수도권 부동산 재산 순위 상위 3위인 성장현 구청장께서는 서울 용산구에 주택 3채,
윤성국 의원(더불어민주당, 이하 윤) : 의장. 신상의, 설혜영 의원 개인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만 해주십시오.
김정재 구의회의장(국민의힘, 이하 김) : 의원님. 신상 발언은 신상 발언에 맞는 것만 하세요.
윤 : 신상 발언인데 왜 구청장 재산 문제가 나오고 이촌동 파출소 문제가 나옵니까? 자기 신상에 관한 것만 하라는 말입니다.
설 : 윤성국 의원님. 의원님과 저는 동료의원입니다.
윤 : 동료의원이기 전에 설혜영 의원이 혼자 좌지우지하니까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김 : 신상 발언에 대해서만 얘기하세요.
설 : 의장님 장내 소란 있습니다. 경호권 발동해 주세요.
지난 2018년7월 서울 용산구의회 개원 27주년을 맞아 구의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줄 맨 왼쪽이 성장현 구청장의 부동산투기·이해상충 의혹을 제기한 설혜영(정의당) 구의원이고, 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김정재(국민의힘) 구의회의장이다. 또 뒷줄 오른쪽 첫번째는 윤성국(더불어민주당) 구의원, 뒷줄 오른쪽 두번째는 하반기 의장으로 내정됐다가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오천진(국민의힘) 구의원이다. 구의회 홈페이지 갈무리
일부에서는 성 구청장의 영향력이 구의회의장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의심한다. 올 7월1일 후반기 구의회의장 선출 과정에서는 총 13석 가운데 7석을 확보한 국민의힘(6석)·정의당(1석) 연합이 내정한 의장 후보가 탈락했다. 용산 지역구를 둔 권영세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용산구 당협위원회는 ‘야당 역할에 충실하게 구청장을 견제하자’며 오천진 구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 6명 중 5명이 전반기 의장이었던 김정재 의장을 재선출하는데 표를 던지며 ‘반란’을 일으켰다.
오천진 구의원은 “김 의장은 성 구청장이나 민주당 구의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성 구청장은 의장 선출에 아무 영향도 안미쳤다고 하지만, 저렇게 의장 재산공개를 놓고 저렇게 여야가 모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그 말을 누가 믿겠느냐”고 지적했다.
설 구의원도 “지방정치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것 같다. 구청장 도움 없이 의정활동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구정을 감시하는 의정활동은 피하다 보니 곪아 있는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구의회 모습 때문일까. 지난 16일엔 한 시민이 ‘삼가 용산구 민주주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적은 근조 화환을 용산구 의회 앞에 배달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