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언 유착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해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 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독직폭행 사건 뒤 검·언 유착 의혹 수사가 사실상 멈춰버린 이유가 자신의 휴대전화 해제에 협조하지 않고 있는 한 검사장 탓이라며 이를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 자기부죄금지의 원칙 등 피의자의 헌법상 권리를 무시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추 장관이 12일 “채널에이 사건 피의자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례와 같이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외국 입법례를 참조해 법원의 명령 등 일정 요건하에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추 장관이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 제정 검토의 이유로 든 검·언 유착 의혹 수사는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열어보지 못하면서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나아가 지난 7월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가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고 정 차장검사가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되면서 수사는 좌초 위기에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휴대전화 포렌식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며 여러 차례 한 검사장을 공개 비판했던 추 장관이 입법을 통한 강제 잠금해제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추 장관이 추진하려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이 “인권침해 소지가 큰 과잉입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요즘 스마트폰은 단순히 통화내역뿐만 아니라 이메일, 은행 계좌 등 개인의 모든 정보들이 연동돼 있어 비밀번호 공개를 강제할 경우 한 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법에선 자기 증거를 인멸하는 작위 행위도 처벌하지 않는데 압수수색을 당한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부작위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아 과잉입법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정의당 장혜영 원내대변인도 “기존 형사법에서 보장하는 자백 강요 금지, 진술거부권, 자기 방어권, 무죄 추정 원칙을 뒤흔드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추 장관의 지시가 알려진 뒤 한동훈 검사장도 “반헌법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추 장관은 이날 논란이 거세지자 페이스북에 “인권국가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에서도 암호해제 등에 응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법제가 있다”며 “우리나라도 헌법의 자기부죄금지 원칙과 조화를 찾으면서 디지털시대의 형사법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글을 올려 입법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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